2021.07.02 10:17
성경은 압살롬의 반란을 계기로 다시 불거져나온 이스라엘 내부의 분열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먼저 유다 지파 내부에서도 압살롬을 따랐던 자들과 다윗에게 충성한 사람들이 나뉘었고, 나머지 이스라엘 지파들에서도 역시 동일하게 분열이 일어났습니다. 압살롬이 죽자 일단 다윗은 평화롭게 모두를 다 감싸 안으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윗을 다시 예루살렘으로 모셔오는 일을 통해, 나머지 이스라엘 지파들이 (19:9-10), 유다 지파가 (19:11-15), 베냐민 지파 (19:16-23)와 사울 왕가(19:24-30)가 차례대로 다시 다윗에게 복속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다른 지파들과 유다 지파의 갈등이 일어나고 그 결과 베냐민 사람 세바가 또 다시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아벨 성읍의 지혜로운 여인 덕택에 대대적인 전쟁으로 이어지지 않고 그 한 사람의 죽음으로 반란은 평정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성경은 다시 요압이 다윗의 뜻(20:4-6)을 거스려, 아마사를 죽이고 (20:8-13), 동생 아비새를 누르고, 다시 스스로 군대장관의 직위에 복귀한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20:22-23).
밧세바를 범하고 우리아를 죽인 죄의 대가로, 다윗은 삶과 사역에 아주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습니다. 그의 집에서 칼이 떠나지 않겠다 하신 말씀처럼, 압살롬의 반란은 다윗 개인의 죄로부터 시작해서 자기 집과 친지, 그리고 유다 지파와 이스라엘 온 지파로, 일파만파로 퍼져나갔고, 요압의 예에서 보는 것처럼 다윗은 내부적인 통제권마저 잃은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그분을 업신여길 때, 자신도 업신여김 받게 되는 것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삼상 2:30).
압살롬과 그의 반란과 관련하여 요압은 정치적으로 매우 합리적인 행동을 취했습니다. 압살롬을 죽인 것도 단지 원한 관계가 아니라 불씨를 없애려는 것이었고, 다윗을 설득하여 압살롬의 죽음을 슬퍼하기보다는 다시 왕권과 나라의 질서를 추스리는 일에 나서게 한 것도 현명한 일이었습니다. 반란에 참여했고 자질이 떨어지는(20:2) 아마사를 처단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습니다. 다만 후에 다윗이 말하는 것처럼 평화 시에 피를 흘린 것(왕하 2:5)과, 이는 아무리 잘 보아주려 해도 예전에 아브넬을 죽인 것을 포함하여, 2인자로서의 자신의 입지를 위해 정적을 제거한 잔혹한 행동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