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26 10:26
패역한 일을 저지른 기브아 사람들과 베냐민 지파 사람들, 기브아 사람들의 패역한 일을 방조한 공범인 에브라임 지파 출신 주인과 여행 중 그의 집에 머물렀던 레위인은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 다시 한번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대처합니다. 겉으로 보면 모두가 정당한 일을 행한 것 같고, 그것도 하나님께 물어서 행한 것입니다. 사사기 저자는 그 일을 담담하게 사실만 진술하면서, 우리에게 그 이면에 숨겨진 안타까운 아이러니를 발견하게 합니다. 공범 레위인은 죽은 첩을 12 토막 내 각 지파에 보내는 끔찍한 방식으로 이스라엘을 소집했고, 절반뿐인 진실로 호도하여 모든 죄를 기브아 사람들에게 덮어씌웁니다. 그동안 분열을 거듭하던 이스라엘은 하나가 되어 모든 악을 기브아 사람들에게 전가하고 징벌에 나섭니다. 베냐민 지파는 돌이키고 용서를 구하기는 커녕 같은 지파라고 무조건 옹호하고 나머지 이스라엘 사람들과 싸움을 자처합니다.
그들의 물음과 하나님의 답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족속들을 치러나갈 때 맨 처음 모습과 똑같습니다. 하나님은 답하셨지만, 사실은 양편 모두를, 즉 이스라엘 전체를 심판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모두가 진멸의 대상이 되었고, 스스로 서로를 치게 된 것입니다. 그들 모두 자신들 안에 있는 죄를 깨닫고 돌아오길 촉구하셨지만, 그들은 후회에 그치고 맙니다. 또 한번 해결책을 구한다는 것이 겉으로 보기에 정당한 처사인 것 같지만 그 방법은 지금 말로 하면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야베스 길르앗 사람들에 대한 '잔인한 학살'과 절기 때 실로에서 춤추러 오는 여인들의 '인신매매'였습니다. 한 지파가 궐이 난 상태에서 길르앗 사람들이나 나머지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에 항거할 분위기도 아니었음은 자명한 일입니다.
이처럼 사사기 앞부분에서 말했던 '그들이 돌이켜 우상을 숭배하고'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던' 모습과 그로 인해 그들이 자처한 심판의 결과는 정말 암울합니다. 그나마 입다의 이야기 전에 잠깐이라도 회개하고 돌이키는 모습을 보여준 정도가 (삿 10:10-16) 당시에는 최선이었던 것 같습니다. 죄인이기에 우리는 죄를 짓습니다. 더 중요하고 큰 문제는 죄를 짓고 난 뒤에 어떻게 반응하는가 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시고 용서와 다시 은혜 베풀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심리학의 도움을 받아 용서의 싸이클을 이해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잘못된 하나님 인식 방법으로 자폐적 대상(하나님) 인식, 분열적 하나님 인식, 자학적 하나님 인식 세 가지가 있습니다. 자폐적인 하나님 인식은 하나님이 절대 자신의 인격적인 삶 안에 모셔들이지 못합니다. 분열적 하나님 인식은 자신에게는 선만 있고 타인에게는 악만 있어서, 하나님은 언제나 자기 편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학적 하나님 인식은 그 반대여서 언제나 자신은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일 뿐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건강한 모습은 사랑과 용서의 하나님께서, 선과 악이 공존하는 우리 (나와 타인 모두)를 다 용서하시고 사랑하실 수 있다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특히 분열적인 대상 인식 방식은 사람들에게는 있는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로, 나쁜 일이 생겼을 때 모든 악을 외부요인과 타인에게 돌리고, 자신은 순전히 억울한 피해자로 여기며, 하나님이 자기 편을 들어주어야 한다고만 보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뉘우침에 해당하는 말은 히브리어 원어로 '나함'이라는 동사입니다. 일반적으로 구약에서 회개에 해당하는 용어를 '나함'(נחם)이나 '슈브'(שׁוב) 두 단어에서 찾는데, 실제로 이 두 단어는 대부분의 경우, 전자는 후회와 위로, 후자는 움직임을 표현할 때 방향을 돌이킴의 뜻으로 자주 사용되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신인동형적 표현(anthropomorphism)으로 하나님이 '한탄/후회하신다' 혹은 '그 마음이나 뜻을 돌이키신다'는 뜻으로 두 단어가 각각 차례대로 하나님께 사용되었습니다. 특히 돌이킴이 하나님을 향하여 돌아옴과 하나님을 등지고 우상에게로 향함에 모두 다 사용되고 있는 점을 보면 (삿 2:17, 19, 8;33), 문맥 전후 상황으로 그것이 회개의 의미를 담았다고 보는 게 더 맞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본문 중에 신명기 30:1-10절이 회개의 개념을 가장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