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13 16:57
성령께서는 의도적으로 안디옥교회를 타민족선교 혹은 타민족교회개척 운동에 부르시고, 특히 바나바와 사울을 그 사역에 따로 세워 투입하십니다. 두 가지 주목할 사실이 있는데, 하나는 어제 묵상글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안디옥교회의 태생적 열방 선교 DNA 입니다 (11:19). 둘째는 사울을 회심시켜 부르신 목적입니다 (9:15). 둘 모두 한결같이 하나님의 열방 선교 목적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금식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할 때, 성령께서 당신의 사역을 위해 바치라 간청하신1 사람들이 가장 중요한 두 지도자였음에도, 안디옥교회는 신실하게 순종하여 그 둘에게 안수하여 보내고 마가 요한이 수행하여 함께 나섭니다.2
13 장에서는 바울의 첫 선교여정 중에, 구브로 섬의 바보, 비시디아 지방의 안디옥에서의 사역이 나옵니다. 바울 자신이 유대인이며, 당시 주요 도시에서는 회당을 중심으로 디아스포라 유대인과 타민족 출신 유대교 개종자들이 있었기에, 그는 어딜 가든지 회당에서부터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어디에서나 유대인의 반대에 부딪혔고, 핍박으로 육신의 고난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구브로 섬의 바보에서는 유대인 출신 마술사 엘루마가 바울을 훼방했고, 비시디아 안디옥에서는 회당의 유대인들이 바울의 복음 전파에 논쟁으로 대응했습니다.) 그럼에도 일부 유대인과 많은 타민족들이 복음을 믿고 예수님께 돌아왔습니다 (13:45-49).
바울이3 비시디아 안디옥 회당에서 전한 말씀은, 계속되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 이스라엘의 죄 가운데에도 하나님은 길이 참으시고 다윗과 같이 주어진 삶을 드려 자신의 시대에 하나님의 뜻을 이룬 사람의 혈통에서 마침내 그리스도 예수가 나게 하시고, 유대 종교지도자들과 로마 정부의 야합으로 십자가에 처형되었지만, 하나님은 이를 살리시고 그의 부활을 통해 회개와 죄사함의 은혜를 주셨다는 메시지였습니다. 바울의 고백적인 설교는 자신과 같은 유대인들을 향한 것이었고, 동시에 모든 민족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교회는 오늘도 동일한 메시지를 자민족과 타민족에게 증거하는 공동체입니다.
1. 13:2절에서 헬라어 원어 표현 중에 번역으로 표현되지 않은 두 단어가 있는데, '데 모이 (δή μοι)'로서 '반드시 나에게'라는 구절입니다. '반드시'는 명령형 '따로 세우라'를 강조하는 말인 반면에, '나에게'라는 1인칭 여격 대명사는 소위 ethical dative라고 하여, 영어식으로 하면 'please'에 해당하는 표현입니다. 따라서, 2절 말씀에 이 두 가지를 가미하여 의역한다면,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해 꼭 바나바와 바울을 따로 세워다오' 혹은 '--- 세워주겠느냐' 정도가 될 것입니다.
교회가 주님의 뜻을 받을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임에도, 성령께서는 인격적으로 교회가 수용하고 헌신하기를 부탁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가 기도와 함께 금식까지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발견했다는 의미이며, 그 때 다시 한번 금식하고 기도하며 그 뜻에 순종하기를 힘썼다는 것입니다. 또한 성령께서 이 과정을 주도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에는 안디옥교회가 안수하여 보냈고 (13:3), 성령께서 보내셨다고 (13:4)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마가 요한은 베드로가 구술한 대로 마가복음을 썼던 사람이요, 오순절성령 강림 때에 120명의 제자들이 함께 그의 다락방에서 기도했었습니다. 또한 베드로가 갇혔을 때도 교회는 그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또한 바나바의 사촌이기도 합니다 (골 4:10). 예루살렘에서 안디옥교회의 사역을 위해 파송되었던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행 12:25). 그는 바나바와 사울의 파송에 맞춰 그들과 동행했고, 바보에서의 사역 후에 어떤 이유에서든지 중도 하차함으로, 후에 2차 선교 여행 때 바나바와 바울이 갈라서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그의 중도 하차 이유에 대해 정확한 언급은 찾을 수 없지만, 아마도 바울이 아무런 조건 없이 믿음으로만 타민족 사람들이 구원받는다고 한 점에 대해 처음에는 동의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닌가 추측이 됩니다.)
그러나 골로새서 4:10절과 빌레몬서 1:24절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바울의 1차 투옥 때 그와 함께 있었고, 디모데후서 4:11절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바울은 그가 자신에게 요긴한 동역자임을 말함으로 어느 시점에선가 오해를 풀고 계속 동역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3. 13:9절부터 사울은 '바울'로 불리기 시작합니다. 9절 말씀처럼, 사울은 유대식 이름으로 바울은 헬라/로마식 이름입니다. 유대인들보다 타민족들을 향한 사역에 더 집중하게 되면서 섬김의 대상들에게 더 편한 헬라/로마식 이름을 주로 사용하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사울의 이름 뜻은 (혹 잘못 알려진 것처럼 '큰 자'가 아니고) '구하는 자'라는 뜻이며, 바울의 이름 뜻은 작은 자란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