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15 10:33
바울의 2차 전도여행은 여러 면에서 반전의 연속이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1차선교여행 때 갔던 소아시아 남부 갈라디아 지역에 있는 도시들을 순회하며 예루살렘공의회 결정을 알리고 교회들을 굳게 하고, 루스드라에서 제자 유대인 출신 디모데를 합류시켜 소아시아 북부 비두니아 지역을 돌아 복음을 전하려고 했습니다.1 그러나 성령께서 다른 길을 제시하시고, 마게도냐 사람들이 "와서 도우라"는 환상을 보여주셔서 바울의 선교팀이 이를 확신하고 즉시 방향을 바꿔 마게도냐로 향하고, 그 결과 아가야 지역(아덴과 고린도)까지 가게 됩니다.
빌립보에 도착한 바울은 강가 기도처에서 옷감 사업을 크게 하는 루디아를 만나 첫 회심자를 얻고 그녀의 집에서 교회가 시작됩니다 (16:14-15, 40).2 점치는 여종에게서 귀신을 내쫓았다가 그 주인들에 의해 기소되어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혔지만,3 기도와 찬송 가운데 족쇄가 풀리고 옥문이 열리는 기적이 일어나, 간수4와 그 집을 구원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16:31-35). 로마 관리의 사죄와 부탁5으로 빌립보를 떠나 데살로니가로 가고, 회당에서 예수님을 증거하여 많은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믿게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시기하고 핍박하여 밤에 몰래 베레아로 옮겨가 그곳에서도 복음을 전하지만, 데살로니가에서 원정 핍박대가 오는 바람에 바울은 다시 혼자 떠나 아테네로 가야 했습니다.
영적으로 육적으로 고군분투해야 하는 정말 어려운 상황이었지만(17:14-16, 살전 3:7 참조),6 바울은 당시 헬라 철학과 문학의 중심이었던 아테네에서 행해지는 다신 숭배에 열정에 의분을 참지 못하고 (사 65:3 참조),7 유명한 아레오바고(아크로폴리스) 설교를 하게 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자연과학적으로 만물의 근원을 신으로 이해)에서 모든 것을 움직이게 시작했으나 자신은 움직이지 않은 최초의 동인(動因)이 창조주 하나님이시며 (17:28), 그분이 모든 민족의 주거와 경계를 정하시는 분으로, 마지막 때에 예수님을 보내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모든 민족이 살 길을 주셨다고 선포한 것입니다. 놀랍게도 소수이지만 믿는 자들이 생겼습니다.
1. 아래 지도를 참조해 주세요.
2. 바울이 빌립보에서 회당을 찾지 않고 강가 기도처를 찾은 것을 보면, 당시 빌립보가 마게도냐 지역 중심 도시였음에도 유대인들 특히 남자들이 많이 없었던 곳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미쉬나에 의하면, 유대인 성인 남성 10명이면 어디에서든 회당을 세우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바울이 만난 사람이 여성 기업인이었던 것도 그 방증으로 보입니다.
3. (지금도 점치고 굿하는 무당들이 같은 상황에 있는 것처럼) 이 여종은 귀신의 힘을 빌어 점을 쳤는데, 바울은 쉽게 이 여종을 고쳐주지 못했습니다. 이는 그 여종에게 들러붙어 수익을 보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라 여럿이었기 때문에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4. 이 간수가 자살하려고 했던 것은 당시 로마법 상 죄수를 놓치면 간수가 그 책임을 져야 했기 때문입니다.
5. 바울은 매를 맞기 전에는 자신이 로마인인 것을 밝히지 않고 풀려날 때에서야 자신의 신분을 밝힙니다. 복음 증거에 있어서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과 역사를 의지하는 모습이 어떤 것인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6. 데살로니가 3장을 보면, 후에 고린도에 도착했을 때 디모데와 실라가 돌아와 다시 합류합니다. 그 때까지 바울은 혼자 버텨내면서 재정적으로도 영적으로도 육적으로도 매우 힘들게 보낸 시기였습니다. 빌립보서를 보면 이 때에 빌립보 교회의 헌금이 큰 힘이 되었던 것도 알 수 있습니다.
7. 유심히 아덴을 살펴보던 바울은 알지못하는 신에게라고 까지 제단을 만들어 놓은 것과 당시 유명학파인 에피쿠로스 학파(쾌락주의)와 스토아 학파(금욕주의)의 논의를 보면서 거룩한 의분을 참을 수 없게 되어 그들과 토론하기 시작했고 복음을 전하게 까지 되었던 것입니다. 알지못한 신에서 실마리를 찾아, 그들이 더듬어 하나님을 찾게 발견하게 하신 것입니다. 흔히 자연계시를 통해 특별계시를 깨닫고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시편 19편과 연결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