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16 13:45
성령의 감동하심과 환상 중에 마게도냐 사람들의 목소리를 빌어 말씀하심을 확신하고, 선교팀은 마게도냐 (그리스 북부)와 아가야 지방(그리스 남부)을 여행하며 복음을 전했지만 그리 성공적인 결과는 없었고, 바울이 고린도에 도착했을 때는 정말 지칠 대로 지쳐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사람과 사역과 재정 모두에서 다시 힘을 얻고1 사역에 매진하게 되며, 1년 반 동안 귀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
아테네가 명실상부한 헬라 종교/철학의 중심지였다면, 고린도는 상업과 문화의 중심지였고, 고린도서에서 보는 것처럼 그만큼 타락한 세속 문화를 대표하기도 하는 곳이었습니다.2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담대하게 복음 전하라 힘을 북돋우시면서 "이 성 중에 내 백성이 많"다(18:9)고 말씀하십니다! 유대인들은 여전히 배척하고 훼방했지만, 타민족 출신 유대교 회심자 중에 유력한 디도와 회당장 그리스보가 믿고,3 (각주) 심지어는 총독 갈리오가 유대인들의 기소를 무효로 만들어 버리는 등 혁혁한 복음 전파와 하나님의 도우시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바울은 겐그레아에서 서원을 하고 머리를 깎았으며 이를 지키기 위해 일부러 예루살렘을 방문하고, 예루살렘교회와 지도자들과 교제한 뒤에 안디옥으로 갑니다 (18:22).4 고린도에서 동역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5는 바울과 함께 여행하다가 에베소에서 남아, 알렉산드리아 출신 아볼로를 양육해서 고린도로 보내며 그들과 동역해 줄 것을 부탁합니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3차 선교여행을 떠나고 (18:21), 갈라디아지역을 거쳐 1차선교여행 때 세운 교회들을 돌아보고 격려한 뒤 에베소에서 2년 반 동안 두란노 서원을 중심으로 또 놀라운 사역을 감당하게 됩니다.
1. 고린도에 가서 천막제작/보수업을 하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만나 동업/동역하게 됩니다. 당시 유대인 디아스포라는 삶을 위해 최소한의 생업 기술 한두 가지는 가지고 있었고, 바울은 천막관련 생업으로 어딜 가나 일하면서 복음 전하기를 힘썼습니다. (지금 표현으로 하면 bi-vocational 즉 이중 직업 사역자로 비할 수 있겠습니다.) 더욱이 당시 주워섬기는 지식이나 새로운 사상 따위를 전파하며 대접받고 살아가던 유랑 철학자들과 고귀한 복음을 차별화하기 위해 스스로 일하면서 값없이 복음을 나누려고 힘썼습니다. 따라서 아테네 같은 곳에서 동역자들 없이 혼자 일하면서 복음을 전하려고 했던 형편과 중과부적처럼 느껴지는 다신숭배와 다양한 과학/철학 사상들에 대해 고군분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고린도로 간 뒤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만나 동업/동역하게 하시고, 디모데와 실라가 곧 따라와 합류하고, 그들의 손에 빌립보 교회에서 보낸 헌금이 들려 있었습니다. (아래 5번 각주에서 보시는 것처럼,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역시 재산이 있었던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비록 여전히 거세게 훼방을 일삼는 유대인들과 세속도시의 복잡한 상황에 있었지만, 주 성령의 위로와 격려와 교회의 지원과 동역자들과의 팀웍을 통해 힘을 얻어 귀한 열매 맺는 선교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2. 마치 소돔사람들 (Sodomites)이란 말이 동성애를 지칭하는 것처럼, '고린도사람들처럼 논다' 혹은 '고린도사람처럼 된다'하는 말이 성적으로 문란한 삶을 사는 것을 뜻했습니다. 고린도는 남북 육상 통로의 중심이자 동서 해양의 연결점이 되어 무역으로 매우 융성한 도시였습니다.
3. 경건한 타민족인 디도가 회심하여 바울이 그곳에 기거하며 사역했는데, 하필 그곳이 바로 회당 옆이었습니다. 또한 회당장 그리스보도 믿었고, (그 때문에 뒤이어 회당장이 된 것으로 보이는 소스데네도 핍박을 받은 것을 보면) 소스데네 역시 그리스도인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유대인의 반발을 능히 짐작할 만합니다.
4. 뒤에 3차 전도여행 때도 바울은 동일하게 서원하고 머리를 깎고 서원을 이행하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갔다가 잡히게 되는 것을 봅니다. 이는 바울이 유대인이요 유대교인으로서 여전히 그 율법을 신실하게 준수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반대로 그가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18:13). 이는 사도행전 15장과 후에 고린도전서 9장에서 말하는 것처럼, 바울이 모든 사람들을 그리고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기 위해, 이방인에게는 오직 믿음으로 이방인으로서 그리스도인 되게 하고, 유대인들에게는 (그럴 필요가 없음에도) 여전히 율법을 준수함으로써 자신의 유대인 됨을 지키려고 한 것이었습니다. 유대인 혈통인 디모데는 할례를 받게 하고, 디도는 타민족 출신으로 그대로 있게 한 것과 같이 아주 일관된 맥락입니다.
5. 로마서 16:3-5a 절을 보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집에 가정교회가 세워졌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이미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을 믿고 자신의 집에서 교회를 개척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이 로마에서 내려진 추방령으로 인해 고린도에 머물게 되었고, 바울을 만났을 때 기쁨과 동역의 정도는 가히 짐작할 만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 둘을 인용하며, '목숨까지도 내어준' 사람이라고 감사와 천거의 말을 함께 로마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 담았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