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06 16:39
앞서 신비한 지식을 논하는 영지주의적인 거짓 신앙과 가르침이 얼마나 삶과 괴리되어 있는지를 확인했습니다. 그들이 영적인 지식과 그것으로 신적인 존재들과의 친밀함을 주장했지만, 그들의 삶은 타락해 있었고 형제를 미워하며 대가를 지불하는 사랑을 보여주지 못 했습니다. 그러나 참 진리의 말씀으로 신앙과 삶이 합치하는 사람들은 바로 삼위 하나님과의 연합을 맛보게 됩니다.
앞서 예수님의 신성을 인정하는 것이 성부 하나님에 대한 참 신상과 결부되어 있었다면 (2장), 4 장에서는 동일한 내용이 하나님의 영을 분별하는 것에 결부됩니다. 이런 기준이 중요한 것은 세상에 거짓선지자들이 많이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4;1). 하나님의 영을 따라 참말을 하는지 미혹의 영을 따라 거짓말을 하는지 구분하는 기준이 곧 예수님에 대한 바른 신앙 고백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예수님의 영으로 예수님을 '주'라 시인하며 고백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 성령께서 우리에게 깨닫게 해주시는 것은 다름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입니다.1 (1)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즉 사랑의 근원은 우리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 아들을 주셨고, (2) 성자 예수님은 자신을 화목제물로 내어주셨습니다. 이 사랑을 깨닫는다는 것은 또 두 가지 다른 사실을/결과를 의미합니다. 성자 예수님이 우리 안에 거하듯이, 그분을 통해 아버지 하나님이 또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3) 즉 삼위 하나님의 내주하심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4) 또한 이 깨달음은 단지 지식적인 앎이 아니라, (성경적 앎의 원리처럼) 실천을 통해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두려움 없는 형제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1. 요한일서에서 성령은 정말 중요한 역할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성령을 통한 참 믿음의 확인이 중요한 것은 신약 성경 내내 일관된 생각입니다. 교회가 참 교회인가 가늠하는 기준 중에 하나가 바로 성령의 임하심이었습니다. 베드로와 제자들과 예루살렘 교회가 타민족 선교에 주저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베드로와 고넬료의 만남을 주선하시고, 그 만남에서 강권적으로 성령을 부어주심으로 타민족도 하나님이 교회 (즉, 하나님의 백성) 삼아주심을 직접 확인했 주셨습니다. 이는 오순절 초대교회 형성 때 요엘서를 인용하여 하나님이 마지막 때에 자기 백성에게 행하시는 놀라운 일을 증거한 것에서 시작하여, 사마리아에서 복음이 전해졌을 때에도 역시 베드로와 요한이 가서 안수하여 기도할 때 성령을 부어주신 것과 합치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4장에서 이 성령 부어주심에 대하여 수난 전에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떠나신다는 말에 두려워하여 '어디로 가시느냐' 묻는 도마의 질문에 대해, 예수님의 임재를 대신해 주실 또 다른 보혜사로서 소개하십니다. 또한 '왜 세상에 자신을 알리지 않으시느냐'는 가룟 유다의 불만 가득하고 냉소적인 질문에 대하여는 성령께서 증거의 영으로 바로 그 일을 하게 해주실 것이라고 답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