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22 04:03
크리스토퍼 라이트는 솔로몬의 성전봉헌 기도 중, 이방인들을 위한 기도 (왕상 8:41-43)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전제가 있다고 했습니다.
“이에 세상 만민에게 여호와께서만 하나님이시고 그 외에는 없는 줄을 알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그런즉 너희의 마음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온전히 바쳐 완전하게 하여 오늘과 같이 그의 법도를 행하며 그의 계명을 지킬지어다.”
그러나 안타깝고 아이러니하게도 솔로몬은 자신이 그 앞 절들에 나오는 지도자로서 지켜야 할 덕목을 스스로 어겼습니다. 통치 후반기에 하나님보다 이방 여인들에게 마음을 주고, 그야말로 범국제적으로 우상을 숭배하도록 문을 활짝 열어놓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솔로몬 자신이 다윗을 기리고 열왕기 저자가 다윗을 ‘다림줄’로 삼았던 것처럼 그가 끝까지 잘했더라면 그의 삶은 어떻게 평가되었을까요? ‘솔로몬은 그 아비의 삶을 딛고 서서 신실하고 일관되게 세상 모든 문화 영역에서 하나님을 증거하고 영광돌린 사람으로…’ 정도이지 않았을까요?
주의 종 내 아비 다윗이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주의 앞에서 행하므로 주께서 저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고 (왕상 3:6)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에 대한 평가를 보면, “다윗이 여호와를 온전히 따름같이 따르지 아니하고”(왕상 11:6) 그는 백성들을 잘 섬기기보다, 세상 제국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백성들의 멍에를 무겁게”했던(왕상 12:4) 사람으로 기억/기록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주어진 지혜와 부와 힘으로 백성들을 섬기기보다는 군림하여 제국의 영광을 만들어낸 것으로 비쳐집니다. 이 대목에서 하나님이 지으신 꽃 한 송이의 영광이 솔로몬의 그것보다 낫다(마 6:29)고 하신 주님의 말씀이 참 아이러니하게 들립니다.
택하신 민족을 정치적인 나라와 동일시 하기는 어렵지만, 굳이 등가체를 찾는다면 지금의 교회일 것입니다. 은혜 받고, 복음으로 성장하고 난 뒤의 교회의 모습이 솔로몬과 같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세속화의 길, 즉 세상의 길을 걷는 모습이 아닌지요?
20세기 초 최강대국으로 치닫던 독일 사회를 향해 막스 베버는 개신교의 천민 자본주의를 경계했습니다. 그로부터 50년 뒤에 리차드 니버가 세속화의 길을 걷는 미국 교회에게 자신이 하나님 편에 서 있는 것처럼 착각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복음의 진리(사랑과 공의)를 이 땅에 적실성 있게 구현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교회의 선교는 언제나 개인과 사회 공동체의 삶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지금 이곳에 의미 있게 실천하려고 애써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