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03 09:12
예수님은 안식일에 바리새인의 집에 초대받아 식사하시다가, 또 다시 안식일임에도 수종병 들린 사람을 고쳐주십니다. 또한 혼인잔치 비유 , 각종 잃은 것을 되찾는 비유와, 큰아들 비유 등을 통해 제자도를 말씀해 주시며, 주님을 초대했던 바리새인과 그와 함께 초대받은 사람들을 하나님 아버지의 천국 잔치에 초대하시며, 당신께서 바로 그 천국잔치의 주인이심을 보여주십니다. 자기 의를 다 내려놓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라 하십니다 (14:24-27, 15:28).
바리새인에게 초대받은 사람들은 당연히 그들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14:3). 주님께서 둘러보시고 도리어 자격이 없는/ 혹은 '갚을 것이 없는 가난한 자들과 몸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초대하라는 말씀을 듣고, 함께 먹던 사람들 중에 어느 누군가가 "무릇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 (14:15) 말합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자기 의로 천국 잔치에 초대받을 자격이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혼인잔치 비유를 통해 자기 생각과 의를 고집하는 그들이 아니라 그들이 업신 여기는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이 초대 받아 오게 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탕자 비유 역시 잃었던 것을 되찾는 여러 비유의 마지막인데, 집나갔던 아들은 제 발로 스스로 돌아와서 아버지의 잔치에 참여하지만, 되려 집에 있던 큰 아들이 이를 못마땅해 하고 잔치에 들어가지 않는 것을 보고, 아버지가 큰아들을 권하여 잔치에 들어가자고 하는 내용입니다. 잃은 자녀를 되찾은 하나님 아버지의 기쁨에 동참하지 못하는 큰아들과 같은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을 초대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돌아온 탕자가 아니라, 아버지 집에 있는 큰아들에게 진정 아버지의 마음을 되찾으라고 부르고 계십니다.
1. 렘브란트의 명화 '탕자의 귀환'에서 명암과 초점 구도의 대비로, 탕자의 이야기가 전면에 드러나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구도의 초점이 맞춰져 있는 큰아들에 대한 비유인 것을 간파해서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탕자의 비유라고 부르지만, 정작 큰아들의 비유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