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24 12:27
시인을 둘러싼 사람들의 비방은, 시인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질문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시인의 질문에는 이미 답이 들어 있고, 마치 이렇게 고백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 혹시 절 잊으신 건 아니시죠? 저를 버리신 것은 아니시죠? 하나님은 내 힘이시고 구원과 피난처 되는 반석이시잖아요 (42:9, 43:3)! 조금만 더 참고 기다리면,1 다시금 전과 같이 "여전히 하나님을 찬송하"게 될 것을 믿습니다 (43:5)!'
(엇그제까지 보았던 사도행전 말미에 나오는 바울의 예를 보면 이 말씀을 잘 이해할 수 있는 면이 많습니다.) 일이 뜻한 대로 되어가지 않고 모든 것이 부정적이고 실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 낙망하기 쉽습니다. 바울에게 계속 로마로 가는 길이 무단히 지연되는 것 같고,2 그의 운명을 쥐고 있는 '것 같은' 사람들(과 그 뒤에 있는 거대한 제국)이 심지어는 상식을 거스르고 그 뒤에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거스르고 있을 때 더 더욱 낙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 믿음의 끈을 놓지 않고, 시선을 하나님께 고정시키고 그분을 기다려야 합니다. 조금만 지나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타나시고 도우시기 때문입니다. 마치 광풍 중에도 바울에게 나타나 말씀하시고, 말씀하신 대로 그에게 사람들을 맡기시고 구원을 보게 하시고 약속하신 곳에 서서 섬기게 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시인과 하나님을 비방하는 대적, 이 세상은 민족/나라이기도 하고 개인들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간사하고 불의하며 경건치 않은 자들입니다 (43:1). 시인은 아무리 이들에게 둘러싸여 있어도, 하나님께서 진리의 말씀으로 그의 나아갈 길을 밝히 비추시고 하나님의 존전으로 인도해 주실 것을 확신합니다. 그곳에서 또 다시 주님께 찬양드릴 것을 다짐합니다! 말씀을 부여잡고 가는 언제 어디서나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합니다. 세상도 깨닫게 되고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간사하고 불의하며 경건치 않은 세상에 맞서는 우리의 믿음이 바로 이것입니다.
1. 하나님을 '바란다'고 번역된 말의 히브리어 야할(יחל)의 뜻은 기본적으로 '기다린다'입니다. 소망/희망을 뜻하는 말의 동사형인 '싸바르(שׂבר)'나 (시 119:116, 146:5), '카바흐(קוה)'역시 기다린다는 뜻이 있습니다 (시 62:5, 25:5).
2. 바울은 3차전도여행 때 에베소를 떠나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방을 다니며 흉년에 곤궁해진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한 구제 헌금을 거뒀습니다. 마지막 도시인 고린도에서 예루살렘을 향해 갈 때, 로마서를 씁니다. 이 때 이미 여러 번 가려했던 길이 막혔다고 했는데, 예루살렘에서 체포되고, 가이사랴로 호송되어 2년이나 당시 정치적인 이유로 억류되고, 마침내 로마로 가는가 했더니 그를 호송하던 상선이 광풍을 만나 난파되어 조그만 섬에 표류하게 되는 등, 여러 모양으로 지연되고 장애가 많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