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29 14:09
바울은 이제 모든 사람의 관점에서 인류의 조상인 아담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아담은 원죄로 인해 그 후손인 모든 인류에게 죄와 그 결과로 사망을 맛보게 한 대표입니다. 반면 예수님은 아담의 자손으로서 아담의 모든 허물과 죄를 책임지심으로 이 땅 모든 인류에게 하나님의 은혜로 의와 생명이 부어지게 하신 통로이며, 믿음으로 그 선물을 받게 됩니다. 결국 모든 민족 모든 사람들이 아담의 후예라는 점에서 하나이며,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남에서 하나입니다.
3장 말미부터 예수님은 계속해서 모세와 아브라함과 아담에 대비되고 있습니다.1 모세의 율법을 지키는 행위에서 나는 의가 아니라, 그 율법을 온전히 이뤄내시고 그 완성으로 영원한 대속제물 되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통해 의롭게 여김을 받습니다. 할례와 같이 민족 혈통의 표식으로 주어지는 택함이 아니라, 그 이전에 죽은 자와 같은 이에게 후사를 약속으로 주신 것처럼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어느 민족 누구에게나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스스로 '인자' 곧 사람의 아들 (벤 아담)이라 칭하심으로 모든 아담의 자손들을 대표하는 분이심을 밝히셨습니다.2
계속해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로마교회가 유대인/비유대인 출신 유대교 회심자/비유대인 출신 그리스도인으로 구성되었다는 점과 그로 인해 여러 가지 다른 생각과 행동에서 피할 수 없는 차이점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염두에 두고, 모든 사람(/민족)의 관점을 계속해 가고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바울의 편지는 목회적이면서 동시에 선교적입니다. 우리 모두가 아담에게까지 올라가 죄인 된 것을 인정하는 것에서 하나이며,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그분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고 그분의 가족, 공동체, 교회가 된 것에서 하나입니다. 이 복음의 핵심에서 하나라면, 다른 인종/문화 차이로 인한 것들에 대해서는 서로 이해하고 용납해야 합니다.
1. 모세는 율법과 의를 중심으로, 아브라함은 할례와 믿음을 중심으로, 아담은 죄와 생명을 중심으로 대비되고 있습니다.
2. '인자'라는 표현은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스스로 사용하신 명칭으로 (마태 30회, 마가 15회, 누가 25회, 요한 12회 이상 사용됨), 구약에서 따온 개념인데, 벤 아담 (בן–אדם 약 107회)이 주로 사용되었고, 바르 아나쉬 (בַ֥ר אֱנָ֖שׁ 7:13), 바르 나샤 (בר נשא) 등으로도 표현되었습니다. 예수님과 관련해서는 다니엘서의 내용이 중요합니다.
예레미야에서는 일반적인 사람들이란 뜻으로 (49;18, 49:33, 50:40, 51:43, 시 58:1/잠 8:4, 31, 삼상 26:19, 사 51:12 등등)
에스겔서에서는 하나님이 에스겔을 부르실 때 (93회 사용됨)
다니엘서에서는 메시아(예수님을) 암시하는 말로 (10:16, 한편, 7:13-14에서는 바르 아나쉬, 8:15절에서는 마르에 게벨 등처럼 같은 뜻이나 다른 히브리어 표현이 사용됨)
결국,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이 함께 나타나면서도, 사람의 아들로 하나님이 약속하신 메시아/ 왕권을 가진 분이란 뜻이 들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