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9.02 12:34
10 장에서 바울은 신명기 이사야서 요엘서 등의 말씀을 언급하는데, 신약 성경 어느 곳보다도 구약 말씀이 많이 인용되어 있습니다. 특히 신명기는 출애굽 직후 시내산에서 주셨던 율법을 40년이 지나 가나안 입성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모세가 다시 이스라엘 백성에게 설교/가르침 형태로 명하는 책입니다. 광야 40 년 삶을 겪은 상태여서 모세가 보는 이스라엘의 미래는 암울하며, 불순종 했을 때에라도 다시 하나님 앞에 돌이키도록 하는 데에 더 강조점이 있습니다. 인용된 모세의 말은 (10:6-8), 하나님은 불가능한 일을 행하라 하심이 아니고 이미 이뤄주신 구원을 바탕으로 마음으로 믿고 입술로 고백하면 따를 수 있는 말씀을 주셨다는 것입니다.1
그러나 유대인들은 구체적인 행동 강령으로 순종을 풀어냈지만, 그것을 규율로 만들고 그 과정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가 아니라 자신들의 의로 하나님의 의와 구원을 대체했습니다.2 그 결과 이사야의 말처럼 구약에서도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타민족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고 구하며 그런 자들에게 하나님이 당신을 나타내시고 응답하시는데, 정작 당신의 백성은 외면하여 종일 그 백성에게 구애하는 모양이 되었다고 합니다.3
바울은 이런 구약 성경의 요지를 받들어, 지금도 많은 유대인들이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하나님이 주신 영원한 대속제물/대제사장/성전 되신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들의 의만 고집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안타까워합니다. 더욱이 예수님의 복음이 바울이나 흩어진 많은 유대인 출신 디아스포라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널리 전해졌음에도, 많은 유대인들이 여전히 믿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바울은 이런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궁구해볼 때, 모세의 말처럼 '시기나게 하심'을 통해 이스라엘이 깨닫고 돌아오게 하려는 것임을 깨닫습니다.그렇다면 하나님의 계획은 무엇인가 질문하고, 이는 '시기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이라 답합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 장에서 다룹니다.
1.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의 구원)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에, 몇 차례 모세와 아론의 시도가 불발로 끝남에 따라 그들의 종살이만 더 심해졌음에 대해 되려 불평했었습니다. 시내산에서의 율법 수여 자체가, 그 율법의 수행으로 구원 여부를 가늠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백성으로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의 강령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제사 제도 역시 언제나 실패했을 때/범죄했을 때 하나님께 다시 나아올 장치를 주신 것입니다. 결국 이는 행위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분의 임재 안에 거하려는 마음과 고백하는 삶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모세의 지적처럼 이스라엘 백성은 패역하고 목이 곧은 사람들로, 고집스럽게 하나님을 거역했었습니다 (신 9-10장, 신 9:6, 13, 31:27, 사 57:4, 겔 2:3)
2. 기독교는 제자삼는 운동이라고 규정되어야 하는데, 유대인들에게 있었던 똑같은 양상이 교회 역사 안에서 일어나곤 했습니다. 이처럼 마음에서 우러나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이 구조화된 조직 안에서 굳어지고 병들어가는 상황을 '제도화'(institutionalization)라고 부릅니다.
3. 이런 의미에서 열왕기하 앞부분을 보면 아주 극명한 대조를 보입니다. 북이스라엘의 왕 아하시야(아합의 아들) 왕은 자신이 병들었을 때 에그론에 있는 블레셋 사람들의 신 바알세불에게 물어봅니다 (왕하 1장). 반대로 아람의 군대장관 나아만은 자기 병을 고치기 위해 엘리사에게로 나아왔고, 신앙고백을 하고 돌아갑니다 (왕하 5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