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4.18 03:40
시편 101편은 다윗의 시로 표제가 되어 있을 뿐, 어떤 상황에서 쓰여졌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왕으로서 이 땅에 하나님의 통치가 이뤄지도록 소임을 다하기 위해, 자신과 자신을 도와 함께 일할 주변의 사람들 (궁정 신하들 혹은 마음을 나누고 함께 일을 도모할 사람들)의 마음 자세를 논하고 있습니다. 8절 "아침마다 내가 이 땅의 모든 악인을 멸하리니" 하는 말씀을 보면, 어떤 열정을 품었길래 이토록 철저한 마음을 갖는 것일까 묻게 됩니다.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그분의 나라에 거할 수가 없기에, 그분의 다스리심이 이뤄지도록 하겠다는 다짐입니다.
이 일을 위해 다윗은 먼저 자신 안에 있는 악을 내어버리고자 다짐합니다. 사악한 마음은 바르지 않고 굽은 마음입니다 (4절). 비천한 것은 '벨리알'로 쓰레기 같은 인생들을 뜻하는 용어입니다 (3절).1 즉 하나님을 거스려 악을 행하는 패역한 행위들을 일컫습니다. 대신 하나님의 온전하신 말씀 (완전한 길, 1절)에서 눈을 떼지 않고 인애와 정의를 행함으로 그분의 온전하심을 드러내겠다고 다짐합니다. 그것이 그의 찬양이요, 예배하는 삶이었습니다 (1-2절)!
이 일을 위해 함께 할 사람들은, 충성된 자, 즉 열매 맺는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말로만이 아니라 늘 행실로 뒷받침되고 하나님이 열매를 주셔서 함께 하심을 입증되는 사람들입니다. 반대로 거짓을 일삼고, 눈이 높고 마음이 교만하며, 이웃을(/동료를) 중상하는 사람들과는 함께 하지 않을 것을 다짐합니다.2 삼위 하나님의 교제만 보아도, 남녀로 지으시고, 공동체인 교회 안에 우리를 묶어 두심을 보아도, 인생은 홀로 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세워주셔서, 스스로를 살피고 같은 마음을 품은 이들이 함께 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이뤄가게 하셨습니다.
1. 벨리알에 대해서는 1년차 6/1일 묵상글 각주 2번을 참조해 주세요. 오늘 묵상글의 제목 수신제가의 관점에서 엘리는 자녀들의 죄에 대해 철저하게 대처하지 못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http://wordlovers.ca/index.php?mid=RBBBReadingPlanBoard&document_srl=13979&m=0
2. 다윗은 아둘람 공동체를 이렇게 세워갔고, 후에 찬양사역자들을 세우고, 예배제도를 세울 때 이와 같은 마음으로 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밧세바와 우리아의 일처럼 자신을 지키지 못하고, 암논과 압살롬의 예처럼 집안을 다스리지 못했던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요압과 아도니야도 일면 같은 예라고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