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은 더 이상 이 땅에서 소망이 없는 줄 알고, 궁극적으로 하나님 앞에 다시 설 때를 생각하여, 하나님께서 그의 대속자가 되시고, 그의 명예를 회복시켜줄 증인 되어주시길 간구했었습니다. 대속자가 ‘기업무를 자’라는 기본 뜻을 생각해 보면,1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회복될 것을 바라며 탄원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친구들이 그릇된 순환 논리로 욥을 위로하기는커녕 정죄하는 것에 대해 하나님의 책망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 했던 것입니다.
욥의 경고에 몹시 마음이 불편해진 소발은 즉각적으로 반응하여 (20:1-3), 욥이 하나님을 최종적인 구속자와 결정적 증인으로 소환하는 것에 대해 어림도 없는 일이라며 반박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소발의 보기에 욥이 이 같은 고난에 처한 것은 그가 악행하는 자 중에 하나로 그 보응을 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소발은 첫째 진술에서 악인과 의인의 이야기를 함께 해주며, 욥에게 회개함으로 의인의 편에 서라고 촉구했지만, 이번에는 악인의 결말만 얘기합니다. 그의 셋째 이야기가 없는 것으로 미루어, 아마도 소발은 욥이 회생 불능이라 생각하고 마지막으로 단죄한 것으로 보입니다.
소발이 말하는 대로 악행을 일삼는 사람들은 일순간에 그들의 지위와 권세와 힘과 영광과 재물이 온데간데 없어질 것입니다. 20:19-20절에서 ‘이는’이란 말 뒤에, 악행하는 자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나옵니다. 가난한 자를 토색하고, 남의 땀과 공을 빼앗으며, 욕심이 끝이 없는 자들입니다. 앞서 에스더서에서 살펴보았던 하만이 바로 연상됩니다. 그러나 욥은 절대 그런 사람으로 묘사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친구들은 마치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이 (율법의 참 뜻/목적이 아니라) 장로들의 유전을 지키지 않는 것을 보고 예수님을 가리켜 바알세불이 지폈다고 하는 것처럼, 다시 한번 부당하게 욥을 고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욥 역시 21장에서 악인이 받는 심판에 대해서 그들의 말에 동의하지만 (21:1-6) 정 반대 예도 있으며 (21:7-16, 명제:의인의 고난 vs 대우: 악인의 형통), 또한 죽음마저도 때로는 그들을 심판하지 않는 것을 예로 들며 (21:17-26), 친구들을 책망하고 자신을 변호합니다 (21:2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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