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마게도냐 사람들의 환상을 보고 (행 16:9), 바울은 비두니아를 거쳐 아시아 지역으로 가려던 계획을 바꿔 마게도냐와 그리스 남부 아가야 지역에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빌립보에서의 사역은 성공적이었음에도 탄탄대로가 아니라 옥에 갇히고 쫓겨나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그렇게 데살로니가에 이르렀지만 원정핍박대를 보낼 정도의 강한 유대인들의 도전에 부딪혀 (17:5, 13), 급히 베뢰아로 떠나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바울과 선교팀은 의도치 않게 새로 믿은 성도들을 버려둔 것처럼 되었고, 비방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핑계거리를 제공한 셈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이에 대해 선교팀의 사역이 얼마나 신실한 것이었는가를 스스로 변호합니다. 먼저 그들이 감당한 복음의 사도직이 어떤 사욕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정하고 맡기신 approved and entrusted 사명이었음을 말합니다. 또한 그들이 말씀 전하는 자들로서 물질적으로 은급비를 받는 것이 마땅했지만, 스스로 밤낮으로 힘써 일하여 생활비를 충당하여 복음이 전적인 은혜로 주어지는 것임을 분명히 하려고 했습니다. 더욱이 동족 유대인들에게 당한 고난을 감수하며 복음을 전했음을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상기시켜 줍니다. 바울은 이런 복음을 위한 순전하고 헌신된 자신들의 삶에 데살로니가에 있는 교회들과 성도들도 동참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격려하면서, 계속해서 자신들을 본받아 복음의 가치에 부합하는 삶을 살라고 격려하는 것입니다.1 바울은 계속해서 이 모든 것들이 '너희가 알고 기억하는 것'과 같다고 강조합니다 (2:1, 2, 5, 9, 11). 즉 바울과 선교팀이 행했던 일들에 대해 그들을 증인으로 참여시켜, 하나님이 아시고, 우리가 알고, 너희도 아는 것이라고 스스로 변호함이 정당함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고 받는 모든 일에는 사람의 사욕이 끼어들 틈이 없는 것을 너무나 분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모든 성도와 교회의 삶의 모습에 이 같은 헌신과 격려와 도전이 계속되기를 기도합니다. 성경번역 선교를 위한 주간 기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