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모든 민족에 대한 관점을 지속해 가면서,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와 당대 헬라-로마 사회에 만연한 불의를 대조시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으시고, 즉 민족 간에 차별하지 않으시고 (2:11, 행 10:34-35 참조), 그 마음에 품은 바와 행하는 바대로 보응하십니다. 율법이 있던 유대인들도 핑계할 수 없고, 율법이 없던 비유대인들도 그 양심에 하나님을 알고 율법의 행위를 행하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1 당시 그레코-로만 사회에는 성경이 말하는 남녀의 결혼을 근간으로 한 책임있는 성적 관계와는 전혀 거리가 먼 성적 부패가 만연해 있었습니다.2 그러나 문제는 사람들이 이처럼 죄악된 일들을 부끄러워 하기는커녕, 그렇게 사는 것을 옳다고 여기는 데 있습니다. 정말 뻔뻔하고 고집스럽습니다. 또한 율법을 받아 모든 민족에게 하나님의 의를 드러냈어야 하는 유대인들도, 자신들이 가르치는 율법의 명한 바대로 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을 욕보이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 역시 하나님 앞에 비유대인들과 다름 없이 진노의 대상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에 대해 당장 심판하셔야 마땅하지만, 한 사람이라도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원하셔서 (벧후 3:9 참조) 길이 참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런 풍성하신 은혜를 멸시하고 심판 날에 임하실 하나님의 진노를 자신들의 머리 위에 쌓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정죄하심이 분명한데도, 심지어는 일부 교회가 나서서 '그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고' (1:28) 동성애를 옹호하는 것은 너무나 불쌍하고 악하고 하나님께 송구스런 일입니다. 세상보다도 더 교회에게 복음과 하나님의 의가 필요합니다. 성경번역 선교를 위한 주간 기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