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택한 예루살렘의 본래 목적과 회복되는 모습이 야곱의 정체성과 회복에 비견되어 먼저 서술되고, 그것을 버리고 세상 부와 권세와 정욕을 따라 우상을 섬기는 이방 나라처럼 되어 버린 예루살렘과 이스라엘 백성의 패망을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2:1-5, 6-11). 이어서 4:1절까지 그 추하고 가련한 모습이 어떤지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2:6-4:1절 사이에서 왜 이스라엘 백성이 망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두 차례 지적하고 있습니다. 2:6절의 내용은 아하스 왕의 패역한 모습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도리어 앗수르와 손을 잡고 조공을 바치는 것도 모자라 그들의 우상을 본떠와 섬기고, 가나안 땅의 가증한 우상숭배 행위에 그 어리석은 일을 더했던 것입니다. 3:8-9절은 남왕국 유다와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존전에서 대놓고 그분의 영광을 거스르는 말과 행동을 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이방 나라와 이방신을 구하고 그들의 풍속과 행위를 따른 것입니다. 그 결과 바벨론은 3차에 걸쳐 왕족, 귀족, 모든 기술자 등을 다 사로잡아 가고 유대 지역엔 소위 보잘 것 없는 하층민들만 남겨놓은 것입니다 (3:1-4). 이는 백성을 압제했던 고위층들과 남은 백성 모두에게 심판이었습니다 (3:11-15). 마찬가지로 여인에 비유된 남유다 왕국은 장식물로 비유되는 모든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부와 정치/군사적 힘과 그 아름다움이 다 제거되고, 비참한 모습이 되어 구걸하는 처지로 전락하게 되었음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3:16-4:1). 믿는 우리 개개인과 교회의 존재 가치와 그 아름다움이 곧 하나님 안에서 발견되는 것이며, 믿지 않는 개인과 민족들을 향한 우리의 사명에서 찾아지는 것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합니다. 성경번역 선교를 위한 주간 기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