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자들은 어려움과 고난을 통해 연단받고 성화와 더 큰 복으로 나아갑니다. 그러나 예레미야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주시는 연단 기회도 날려버리고 마침내 바벨론에게 폭삭 망하게 됩니다. 이는 그들이 고난과 역경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찾지 않고, 그들을 짓지도 않았고 구원할 수도 없는 우상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아는 선지자는 울어도 울어도 끝이 없는 마음을 달랠 길이 없습니다. 9-10장의 내용은 현재진행형인 이스라엘의 멸망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바벨론은 세 차례에 걸쳐 유다를 침공하고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예레미야서가 역사적인 순서로 쓰인 게 아니라 주제 별로 묶인 예언집이고, 간혹 역사적 배경을 암시/직시하는 말들로 그 시기를 가늠할 수 있게 쓰여져 있습니다. 예레미야가 이미 살륙당한 백성들을 위해 슬퍼한다는 말과 (9:1) 연단이라는 말에서 (9:7), 1차 침입 이후에 쓴 내용으로 보입니다. 이스라엘의 멸망 이유는 '거짓됨'입니다 (9:3-9). 그 거짓됨의 핵심은 혼합주의 입니다. 이는 하나님도 섬기는 것 같으나 실상은 우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9:13-14). 예레미야가 계속해서 지적하는 것처럼, 요시야의 개혁으로 성전 예배제도가 부활되고 시행되고 있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신앙이 없었고, 여전히 우상에게 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벨론의 침입이 연단의 기회였을 수도 있었지만, 이스라엘은 대신 우상을 찾았고, 사람의 힘을 구했습니다. 이사야와 마찬가지로, 예레미야도 우상에 대해 그들이 우리 인생들을 지은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이 우리 손으로 우상을 만든 것이며, 구원은 커녕 기동할 수도 없는 것임을 지적합니다. 예레미야의 눈물은 이처럼 어리석고 부패한 인생들을 향한 안타까운 하나님의 눈물을 대신 쏟아내는 것입니다 (8:17, 9:16-18). 성경번역 선교를 위한 주간 기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