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을 설득하는 아비가일의 말을 보면, (어떤 일에도 그렇지만) 선교에 있어서 초심을 잃지 않아야 하는 중요한 내용들이 숨어 있습니다. 선교로 시작한 기독교 단체들이 어떻게 세속화의 길로 접어들었는가를 파헤친 Mission Drift 라는 책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하버드, YMCA, PEW 리서처 등등.) 여러 가지 고려사항들이 많지만, 제6장을 보면 그 존재 이유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세 가지 사항을 말하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p.77)
본래 선교 사명(mission)에 충실한 단체들은
- 존재 이유를 안다: 단체 역사를 잘 공부해서 그 단체가 왜 존재하는 지 그 이유를 분명하게 표현할 수 있다.
- 선교 사명과 수단을 구분한다: 어떤 것이 절대 바뀔 수 없는 것이고, 어떤 것들이 바뀔 수도 있는 것인지를 이해한다. 기꺼이 양보할 수 있는 것과 그러지 말아야 할 것을 안다.
- 가장 중요한 선교 사명을 강화하기 위해 변화를 시도한다: 정체되어 있지 않고, 변화를 피하지 않는다. 도리어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들과 목적에 더 부합하게 되는 데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변화를 모색한다.
아비가일은 다윗의 존재 이유가 ‘하나님의 싸움’을 싸우기 위해서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바로 전 24장에서 사울의 추적을 피하는 중에도 한번 들어가면 외통수로 빠져나올 길이 없는 그일라 성에 간 것도, 하나님의 싸움을 싸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사명을 완수해야 하는 것은 자기 백성을 돌보기 위함이었습니다. 나발의 양떼와 목자들의 울타리가 되어 준 것도 그 까닭이었습니다.
그가 나발의 배은망덕과 자신에게 준 모욕을 갚기 위해 칼을 차고 나섰을 때, 그는 그에게 주어진 힘으로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의 공덕과 명예를 지키려 했습니다. 아비가일은 정말 영적인 안목으로 지혜롭게, 다윗이 하나님의 사람, 사명자/선교사(missionary)인 것을 일깨워주고 그의 본래 존재 목적에 맞게 살도록 도와 줍니다.
이에 다윗은 회개하고, 자신을 꾸짖어준 아비가일을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다시금 하나님의 소중한 존재로 그 목적에 맞게 돌이킨 것입니다. (New Living Translation 은 흥미롭게도 ‘생명싸개’를 ‘보화 주머니 treasure pouch’로 번역해서, 다윗이 얼마나 보배로운 존재로 인식되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안타깝게도, 사무엘하 11장에서 다윗은 정 반대의 모습을 보입니다.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지 않고 ‘자기 만족’을 구하고, 섬김이 아니라 ‘군림’하여 사람들을 마음대로 부리고, 지켜야 할 백성과 부하를 ‘착취하고 죽이는’ 존재로 바뀝니다. 다행이 나단 선지자의 맹렬한 꾸짖음에 회개하지만, 너무나 큰 상처와 오점을 남기고 맙니다.
한결같이 consistently 우리에게 주어진 선교 사명에 맞게 살도록, 교회와 단체와 신학 연구기관과 사역자들 모두에게, 아비가일과 같은 분들이 언제나 우리 곁에 있게 해주시길, 하나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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