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과 선교
성경에는 중요한 용어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 구속과 회복 등이 좋은 예들입니다. 그 회복의 결과를 표현하는 말 중에 하나가 “샬롬”입니다. 보통 평화 peace라는 단어로 번역되지만, 동일한 “샬롬”이 ‘복/번성/안전’ 등과 같이 문맥에 따라 다른 말들로 번역되기도 합니다. 이름이 뜻하는 바처럼 솔로몬에게 주신 복, 시편 1편에 등장하는 복 있는 사람 혹은 시편 23편에서 다윗이 표현하는 주님의 임재와 그 결과 등이 바로 샬롬이 의미하는 바를 풀어 쓴 것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소극적인 형태로 어떤 근심 걱정이나 질병 재난/재앙이 없는 상태를 평화로 이해합니다. 나아가 소위 ‘삼박자 축복’과 같은 이야기처럼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고, 강건한 것이 샬롬의 상태라고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의 임재와 언약적인 사랑 때문에, 고난과 전쟁과 질병 가운데서도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것이 “샬롬”이라고 봅니다.
이사야가 예언하던 시기에, 앗수르가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심지어는 예루살렘만 달랑 남겨놓은 상태였을 때가 있었습니다. 근동역사에서 초강대 제국인 애굽을 경험한 이후 처음으로, 북동쪽에서 내려오는 앗수르의 가공할 만한 힘 앞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 위기 상황에서 히스기야의 간절한 기도 끝에 하나님의 은혜, 그 기적으로 구원받았습니다. 전쟁과 멸망의 위기 상황에서 위해를 가하는 앗수르 군대를 하룻밤 안에 다 몰살시키셨던 것입니다 (사 37-39장).
세상 사람들은 최소한 힘의 균형 혹은 힘의 우위가 있을 때 평화를 지킨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 샬롬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궁극적인 샬롬입니다. 모든 사람들과 모든 민족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될 때 참 평화가 옵니다. 애굽에 대해서 경고하실 때, 그 회복도 말씀하시는데, 그들이 앗수르와 더불어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들, 즉 하나님의 것이 된다고 하십니다. 애굽과 앗수르에 통하는 대로가 있게 되고, 이스라엘과 더불어 이들 모두가 다 온 세계의 복이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19:19-25).
하나님이 그 형상대로 지으신 우리들과 이 세상이 본래대로 회복될 때, 하나님이 원래 의도하셨던 지복(至福)의 상태 샬롬이 임합니다. 우리들의 선교도 다름 아니라 모든 민족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고, 이 세상과의 관계도 회복하게 하는 것입니다. 남북 통일 한국이 열강을 이어 하나님을 예배하는 대로가 이어지는 날도 그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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