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문화 차이를 말할 때 서구권과 비서구권으로 양분하여 비교합니다. 그러나 문화인류학에서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대별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 죄의식과 순전함 (guilt - innocence),
- 수치심과 영예 (shame - honor),
- 두려움과 능력 (fear - power)
어떤 문화에든 이 세 가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것에 큰 무게가 실리느냐에 따라 가치관과 그에 따른 행동이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예를 들어, 한국인/한민족의 문화는 이 세 가지 중에 수치심과 영예/두려움과 능력의 비중이 크고, 죄의식과 순전함은 상대적으로 적은 것 같습니다. 수치심과 영예, 두려움과 능력 중에 어느 것이 더 클지는 무속의 영향을 얼마나 많이 받는가에 달려 있는데, 한국인/한민족의 무의식 근저에는 무속이 깔려 있다고 본다면, 절대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열대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두려움과 능력의 비중이 큰 게 분명합니다.
복음은 어떨까요? 저희가 서양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 받았기 때문에 주로 죄의식과 순전함이 가장 많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복음에는 이 세 가지 요소가 다 들어 있습니다. 특히 예수님이 선포하신 하나님나라, 사람들에게 직접 체험하게 해주신 그 나라의 삶에는, 이 세 가지 요소를 다 회복해 주심을 알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1장에서 천국을 선포하신 후에 7장까지 나오는 예수님의 사역을 보면 이 세 가지 요소가 다 들어 있습니다.
먼저 병을 낫게 하시는가 하면 군대 귀신까지 내어쫓으시고, 자연까지 순종하게 하십니다. 능력을 입증해 주신 것입니다. 2장에서 중풍병자를 고치신 경우, 병을 고쳐주신 능력도 있지만, 일부러 '죄사함을 받았다'는 선포를 통해, 죄를 씻어주신 것을 말씀해 주십니다. 1장에 나오는 문둥병자들이나 5장에 나오는 혈루병 걸린 여인을 고쳐주시고, 공중에 알게 하신 것은, 병뿐 아니라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부끄러움에서도 놓임 받게 하신 것입니다.
재미 있는 사실은 이런 주님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특히 두려움과 관련하여 사람들은 일어난 일에 두려워하고, 그것을 다스리시는 주님을 향해 두려운 마음으로 부복합니다. 예를 들어 풍랑을 다스려주심과 죽은 딸을 살리심에 있어서, 딸의 죽음을 두려워하고 풍랑을 두려워하던 사람들이, 주님의 능력을 보고 두려워하고 놀라게 됩니다 (4:40-41, 5:36, 42). 이로써 주님은 정작 두려워할 대상이, 피조물과 자연현상/질병/죽음/이 세상의 힘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을 만드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심을 밝히 보여주십니다.
이런 의미에서 다시 한번 십자가와 부활은 정말 종합적입니다. 우리의 죄값과 그로 인한 수치와 죽음의 두려움을 한번에 다 짊어지고 죽으셨고,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사심으로 죄의 수치와 죽음의 결박을 끊어내심은 물론 우리를 영광스런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해 주신 것입니다. 아직 선교가 필요한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과 능력 중심의 문화권에 있어 그들의 문화에 맞게 복음이 잘 전해져야 합니다. 또한 죄의식과 수치심 역시 중요한 요소들이기에, 온전한 복음이 전해져야 합니다.
참고: 세 가지 다른 세계관에 근거한 문화에 따른 복음 전파 필요에 대해 https://www.youtube.com/watch?v=n2XNoAFtq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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