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프 역사

위클리프 성경 번역 선교회의 역사

1917년에서 1918년 사이 젊은 카메론 타운센드(Cameron Townsend)가 과테말라에서 스페인어 성경 판매를 할 때, 그는 자신이 만난 대부분의 칵치켈 사람들이 스페인어를 알지 못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아름다운 칵치겔어를 옮길  문자도 없었습니다.

타운센드는 성경판매를 포기하고  칵치켈 사람들 사이에서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복잡한 언어를 배우고, 문자를 만들고 문법을 분석하여서 10년이라는 매우 짧은 기간에 신약성경을 번역했습니다. 이후 2년 간의 조판 작업을 거쳐 1931년에 칵치켈어로 신약성경을 출판했습니다. 그가 소속된 중남미선교회에서는 그에게 계속해서 구약성경까지 번역할 것을 요청했으나, 타운젠트는 그들 스스로 할 수 있고, 또한 이들처럼 자기말로 된 성경이 없는 수많은 소수민족들을 위해 동일한 사역을 해야 한다는 부르심에 응하게 됩니다. 

모든 남자, 여자와 아이들이 그들의 언어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고 확신한 타운센트와 뜻을 같이한 동료들이 1934년에 언어 훈련 학교인 “캠프 위클리프”를 설립했습니다. 이듬해 SIL (Summer Institute of Linguistics)라는 현지 선교단체를 설립해 성경번역 사역을 전문으로 하게 되었고, 이후 1942년에 수 많은 언어들에 대한 성경번역 사역을 위해 동원이 절실함을 깨닫고, 종교개혁 이전의 영웅으로서 영어로 성경을 번역한 존 위클리프의 이름을 따라 위클리프 성경번역 선교회를 설립합니다. 

또한 오지를 오가야 하는 사역의 특성 상 추가 지원 사역이 필요하여 위클리프의 기술 지원을 하는 JAARS 가 설립되었고, 이후에 평신도 지원 조직인 위클리프 협회(Wycliffe Associates)도 설립되었습니다.

오늘날, SIL과 위클리프 성경번역 선교회는 세계 국가의 성경번역 단체들과 성경 번역을 하고 언어학에 서 현장 인원을 훈련시카고 번역에 관심이 가도록 홍보하고 있습니다. 위클리프 사역자들은 770 개 이상의 신약 및 성경 번역에 관련되었고, 수천 개의 사역이 진행 중입니다. 그러나 남은 일이 엄청납니다. 아직도 2000 개가 넘는 언어 그룹의 사람들이 아직도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의 언어로 듣지못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