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29 10:43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근간으로 하여 계속해서 흩어진 믿음의 형제들을 권면합니다. 그들의 삶이 늘 하나님의 선하심을 드러내는 구별된 거룩한 삶이어야 합니다. 또한 환난과 고난 중에도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부활을 맛보게 하시는 삶이 될 것이라고 격려합니다. 서로 사랑하고 하나님의 (성령의) 은혜로 맡겨진 은사대로 선한 청지기로 섬기는 삶을 살라고 합니다.
베드로전서에는 유난히 선함을 강조하는 말이 많이 등장합니다.1 다른 곳에서도 물론 많이 쓰이기도 하지만, 선한 마음/양심/행위 등을 강조함으로써, 그리스도인들이 어디에서나 그 삶으로 칭찬받음으로 본이 되고 복음 전함의 기회를 얻게 하기 위함입니다. 나아가 시편 34 편(특히 12-16절)을 인용하며,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그분을 경외하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따"르는 자를 신원해 주시는 분임을 강조합니다. 그 대표적인 의인의 예는, 우리 죄를 위해 단번에 드리신 바 되신 예수님이십니다. 베드로는 그 주님을 하나님께서 부활하게 하시고 보좌 우편에 앉아 천사와 권세와 능력이 그분께 복종하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 없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 믿음으로 변화된 성도를 향해 우리가 그들과 함께 타락한 삶을 더 이상 살지 않는 것을 이상히 여기고 비방하는 것입니다.2 믿음을 가진 자들은 모든 육체의 정욕을 따르는 일을 그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주님과 같이 남은 삶을 살려는, 성화의 삶이 너무나 당연한데도 말입니다. 따라서 주님은 이 땅에서 주님처럼 고난 받고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의 소식을 전하셨고, 반대로 불신앙과 방탕의 길로 치닫은 사람들에게는 심판을 선포하셨던 것입니다 (요 3:16-18 참조).2
1. 헬라어 성경에는 '칼로스'와 '아가토스' 두 단어가 좋은/선한의 의미로 사용되었는데, 특히 베드로전서에는 후자가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선한'이라는 같은 어근을 가진 말들이 쓰인 예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선한/선함/선 (형용사, ἀγαθός 명사적 용법 포함)
- 벧전 2:18, 3:10, 11, 13, 16x2, 17(비교급, '나으니라'), 21(, 벧후 2:21)
선을 행하다 (동사, ἀγαθοποιέω)
- 벧전 2:14, 15, 20, 3:6, 17
선을 행하는 (형용사, ἀγαθοποιός)
- 벧전 2:14
선을 행함 (명사, ἀγαθοποιΐᾳ)
- 벧전 4:19
좋음(/선함, 형용사, καλός)
- 벧전 2:12 x2 (행실을 선하게/ 선한 행실)
4:10, (선한 청지기)
2. 3:19절과 4:6절은 다양한 논의가 가능한 난해 구절입니다. 죽은 자들에게 제2의 회개 기회를 주는 것 (로만 카톨릭은 예수님이 부활 후 선조 림보에 가서 복음을 전했다고 함), 혹은 죽은 자들에게 그들의 영벌이 마땅함을 확증하는 것, 또는 타락한 천사들에게 말한 것 등 여러 해석이 가능하다고 제시됩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전통에 의하면, 창 6장 초두의 이야기는 타락한 천사들에 관한 것이고, 에녹이 홍수 이후에 이들에게 보내져 심판을 선포했다고 합니다. 따라서, 3장에서는 그 이야기를 예로 들고 있고, 4장에서는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 사이에 마찬가지로 불순종하여 죽은 자들에게 심판을 선포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복음을 전했다'는 말이 문제가 될 수도 있지만, 요한복음 3:16-18절을 보면, 복음 전하는 것이 믿는 자에게는 구원의 선포이지만, 믿지 않는 자에게는 바로 심판이 되는 것을 보면 복음 선포의 양면 중에 죽은 자들에게는 후자가 다시 확증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