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계속해서 사람들이 천국의 실재를 경험하도록 먹이시고, 고치시고, 두려움을 쫓아내시는 사역을 하셨고, 나아가 이 놀라운 천국이 단지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모든 민족을 위해 이뤄지고 있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세례 요한의 죽음은 예수님의 때가 온전히 시작되었음을 보여주기도 하면서, 동시에 예수님이 어떻게 죽으실 지에 대한 암시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자기 생각의 틀에 갇혀 하나님이 이뤄주시는 천국을 보고 믿고 헌신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배척하는 고향 사람들은 그들이 알고 있었던 어린 예수, 그들과 별다를 바 없는 평범한 요셉의 가정만 생각했을 뿐 어떤 기대도 없었고, 주님의 놀라운 사역에도 애써 그들이 알던 예수로 폄하시키려고만 했습니다. 헤롯 역시 세례 요한이 다시 살아난 건 아닌지 두려움도 있었으나, 근본적으로 자기 권력을 더 크게 생각했을 뿐, 애시당초 하나님나라에 순복하려는 마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바리새인들 역시 자신들이 세워놓은 율법 조항 준수에 가로막혀 고르반과 같은 위선을 행하고 있음도 모르고, 정결규례를 앞세워 도리어 율법의 수여자이신 예수님을 자신들의 틀 안에 가두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긍휼사역과 가르침에도 오직 떡 먹고 배부른 까닭에 예수님을 찾아나서는 사람들이나, 예수님을 믿고 따라나섰다가도 이내 불신앙을 보이며 물에 빠지는 베드로도, 모두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온전히 알고 믿고 따르는 데 부족함을 보여줄 뿐입니다. 다만 수로보니게 여인만이 제자들의 고정된 생각과 거기 도전하여 예수님이 짐짓 던져주시는 말씀에도 굴하지 않고, 예수님이 유대인만의 메시아가 아니라 온 민족의 메시아 되심을 확실히 믿고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여 들으심을 얻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2년차 5/16일 묵상글 첫 단락 참조). 성경번역 선교를 위한 주간 기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