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에서는 엘리야와 아합의 이야기가 주요 흐름이 되고 여호사밧의 이야기가 첨가된 형태라면, 역대기에서는 정 반대로 남 유다 여호사밧의 이야기에 아합의 이야기가 첨가된 모습입니다. 그만큼 여호사밧의 내치에 대해 긍정적인 면들을 자세히 설명하면서도, 아합과 화친하여 후대에 큰 악영향을 미치게 된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19:2-3, 21:5-6, 22:2-5). 역대기자는 여호사밧에 대하여 그가 백성들에게 율법의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한 사실을 두 번이나 기록하고 있습니다. 17장에서는 사람들을 세워서 그렇게 했고, 19장에서는 자신이 직접 나서서 순회하며 말씀 사역을 했습니다 (대하 17:7-9, 19:4-11). 이는 앞서 다윗이 죽기 전에 힘써 세워놓은, 성전을 중심으로 하여 예배하는 하나님 백성이 되게 하는 제도가 현실적으로 실행된 것을 보여주는 기록으로 (대상 26:29-32, 8/23일 묵상글 참조), 이는 신명기에서 말하는 이상적인 왕의 모습과 (신 17:18-19) 실제적으로 제시된 다윗의 모범을 따른 너무나 훌륭한 예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여호사밧의 모습은 아합과의 연합으로 인해 반감됩니다 (18:1). 북이스라엘과의 연합은 첫째 민족적인 유대에 있어서 당연한 것이요, 둘째 당시 국제 정세를 보면 분명히 이득이 되는 움직임이었습니다. 아람의 세력이 약화된 틈을 타 길르앗 라못을 되찾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7/21일 묵상글 참조). 그러나 이세벨에게 휘둘려 가장 악한 왕으로 치부되는 아합과 협력하고, 그의 집과 혼인관계를 맺은(/연혼한) 것은 분명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19:1-2). 모든 유대 관계를 통해 협력하여 사랑하는 것이 우리의 기본 자세이지만, 주님이 행하시고 바울이 말한 것처럼 하나님을 섬김과 우상이나 귀신을 섬기는 일이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고후 6:14-16, 마 12:24-28 참조). 성경번역 선교를 위한 주간 기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