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1장은 마침내 요단 지역에서 여리고를 지나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과정에 일어난 일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벳새다에서 고쳐주신 맹인과는 좀 다른 바디매오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나귀 타고 입성하시는 예수님과 호산나 노래하며 영접한 따르는 사람들의 이야기, 성전청결 사건, 말라죽은 무화과 나무 이야기 등이 모두 예수님이 누구시며 진정 예수님을 따르는 일의 의미에 대해 계속 얘기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정치적인 메시아나 유대민족만의 구원자가 아니라, 모든 민족의 구원자로 그들이 모두 함께 구속받아 영원히 하나님께 예배할 길을 열러 오셨습니다. 벳새다에서 고쳐주신 맹인 이야기에서는 2단계에 걸쳐 맹인이 다시 보게 되고, 확실히 보게되는 과정을 통해, 마치 제자들의 제한적인 깨달음을 암시하는 것 같았습니다. 바디매오의 이야기는 그럼에도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의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메시아라고 고백했던 것처럼, 바디매오 역시 예수님을 메시아의 다른 표현인 '다윗의 아들'로 칭하며 신앙을 고백하고 아무런 조건 없이 예수님을 따라나섭니다. "지금 우리를 구원하소서!"의 뜻인 호산나를 외치며 찬송 가운데 나귀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오신 주님은, 강도의 굴혈이 된 성전을 뒤엎으시며 원래 하나님이 의도하셨던 만민, 즉 모든 민족이 기도하는 집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하셨습니다. 이는 곧 자신의 몸을 영원한 성전과 희생제물 삼으심으로 이뤄질 일이었고 (요 2:19 참조), 물리적이고 민족적으로 제한되어 있었던 예루살렘과 성전의 종말을 고하신 것과 같았습니다. 이 이야기 앞뒤로 배치된 무화과 나무 이야기는 (샌드위치 구조로) 바로 이처럼 더 이상 열매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처럼 심판받을 예루살렘과 물리적 성전의 운명을 암시하는 것이었습니다. 성경번역 선교를 위한 주간 기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