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장에서 하나님은 출애굽 사건을 기반으로 하여, 당신을 자애로운 아버지로, 이스라엘을 어릴 적 기른 아이로 비유하여, 그분의 애절한 사랑을 알게 해주십니다. 이스라엘을 특히 내 아들이라고 부르심으로 강한 애정을 표시합니다만, 아이는 철이 없어서 아버지가 어떤 사랑을 부어주셨는지 알지 못 하고 끝끝내 아버지를 떠나 돌아오지 않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를 버리실 수 없어서, 심판에 내어주시더라도 다시 싸매고 보듬어 안아주십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여러 차례 당신의 사랑이 어떻게 나타났었는지를 말씀해 주십니다. '내 아들'이라 부르시고 (11:1), '걸음을 가르치고 내 팔로 안고 고치셨습니다' (11:3). 사랑의 줄로 매어 이끄시고, 그를 들어 올리시고 먹여주셨습니다 (11:4).1 또한 심판 당하는 이스라엘을 보고, 차마 소돔과 고모라와 함께 망한 '아드마와 스보임' 같이 그냥 둘 수 없어서 그 안에 불쌍히 여기심이 불붙는다고 말씀하십니다 (11:8). '걸음을 가르치신다'2는 말씀은 마땅히 행할 바를 가르치시는 것과 함께 전반적으로 그 자녀를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며 양육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마치 사춘기 청소년처럼 참된 가치를 알지 못 하고 무조건 반항하듯이 '작정하고 하나님에게서 돌이켜 떠났으며' (11:7)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하여도 아무도 일어나 따르지 않았습니다 (11:7). 그러나 하나님의 불붙는 사랑이 그들을 다시 인도하셔서 돌이키실 때에 그들이 마치 모세의 뒤를 따라 홍해를 건너고 여호수아의 지도에 따라 요단강을 건넜듯, 하나님의 뒤를 따라 걸어오게 될 것입니다. 결국, 주님의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될 때에야, (마치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고집스럽고 무지했던 인생들이 그 분의 뒤를 따라 그 삶을 살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성경번역 선교를 위한 주간 기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