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02 23:04
성경해석에 대한 훈련을 받으신 분들은, 성경 본문이 이미 수신자들의 상황 속에 주어진 메시지임을 알고 있습니다. 주해 하는 사람 즉 성경을 해석하는 사람은 그 상황 속에 주어진 메시지의 참 의도 혹은 원리를 뽑아내어 지금 메시지를 받을 사람들의 상황을 고려하여 어떻게 그 원리를 적용해 주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것이 적확할수록 듣는 이들이 성경의 본래 뜻에 맞게 자신들의 상황 속에서 말씀을 살아내게 됩니다. 동일 문화권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세대가 바뀌면, 혹은 농촌과 도시 상황이 바뀌면, 성경을 풀어 전해야/나눠야 하는 사람이 그 상황에 맞게 성경말씀의 참 뜻/원리를 적용해 주어야 합니다.
바리새인들이 한 일은, 모세가 전해준 율법을 포로기 이후의 당시 상황에 맞게 실제적인 삶의 행동 조항으로 만든 것입니다. 소위 '율법에 울타리를 친다'는 말처럼, 율법을 범하지 않도록 훨씬 더 안전하게 범위를 넓혀 지켜야 할 조항들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주기적인 금식이나 근채의 십일조와 같이 예수님이 들었던 예들은, 그야말로 경건한 생활의 단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토록 좋은 의도로 만들어진 조항들이, 주님이 지적하신 것처럼, 외식하는/두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외형적인 것에만 치우치고 그 좋은 의도를 상실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율법이 모세 당시에 주어질 그 상황을 파악하시고, 그것이 주어진 본래 의도/원리를 뽑아 다시 잘 적용하도록 도와주셨습니다. 마태복음 5:31-32, 산상수훈 부분에도 나오지만, 19장 8절에서 바리새인의 시험하는 말에 대응하여 말씀하신 것처럼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를 원문 그대로 직역하면, '창조 때부터 지금까지 이와 같지 않았다.'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남자와 여자를 만들어 하나되게 하신 뜻을 생각하면, 이혼증서만 내어주면 소위 사회보장 의미에서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 게 아니냐는 식의 적용은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당시 힐렐 학파는 아내가 빵을 잘못 구워 태운다든지, 심지어 나중에는 다른 여인이 더 매혹적이라든지 하면 그런 것도 이혼 사유가 된다고 적용적 해석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남녀의 결혼 연합은 하나님이 하나되게 하신 것이라는 본래 의도와 그것을 힘써 지켜야 한다는 기본 원리에 반하기 때문입니다. (말라기 2:14-16 참조)
주님이 하신 일은 바로 이런 본래 의도, 창세부터 지금까지 변함이 없는 기본 원리를 분명히 해주셔서, 어느 문화에서든지 그 문화와 시대적 상황에 맞게 적용하도록 해주신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크리스토퍼 라이트는 구약성경을 선교적으로 읽어야 한다는 강연에서, 선교를 '이미 상황화된 성경 메시지'를 선교지 상황과 대상 문화에 맞게 '재상황화'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