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30 04:10
엘리야의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가슴이 뛰고 벅차오릅니다. 정말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은 그의 삶은, 본인은 힘들었겠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너무나 흥미 진진합니다. 그럼에도 급전직하, 갈멜산 승리 이후 그의 모습은 너무나 극에서 극을 오가는 것 같습니다. 놀라운 승리에도 이세벨을 피해 목숨을 건지려고 도망하는 모습. 자신만 고군분투하는 것처럼 보이고,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은 것 같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도 모르겠고… 육적으로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완전히 탈진된 상태의 엘리야. 급기야는 죽여달라고까지 합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되려 그의 모습에서 위로와 힘을 얻습니다. 우리도 그와 유사한 상황에 처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이 엘리야에게 새힘을 주셨던 것 같이, 저 자신에게도, 또한 지금도 사역 현장에서 여러 문제들과 불확실한 미래 등 여러가지 고민과 갈등에 고심하고 있을 많은 선교사들에게도 동일한 은혜를 주십사 간구하는 마음으로 나눕니다.
나뿐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어느 한 사람이 아니라 당신을 믿고 따르는 공동체를 남기십니다. 그들이 연합하여 일하게 하십니다. 오바댜와 엘리야가 함께 일한 것도, 7000인을 남기셨다는 말씀도, 나만 일한다는 생각도 금물입니다. 되려 나는 그 중에 지극히 작은 한 사람인데도 감격스럽게 하나님이 불러 쓰고 계신 것입니다. 필드에 있는 선교사들이나, 동원선교사들이나, 어떻게 일꾼을 찾나, 동역자들을 얻을까 고민할 때가 많습니다. ‘기우’입니다. 이미 예비하신 분들이 많고, 그분의 때에 가장 적합한 사람들로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 9:29-30) 내가 아니어도
갈멜산의 승리에도 오므리 왕가와 이세벨에 대한 공의의 심판은 이뤄지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부적으로는 예후, 외부적으로는 하사엘, 사역으로는 엘리사를 세워, 이 세 사람들을 통해 그 심판을 완전하게 이루실 것이었습니다. 왕하
9:25-26절에서, 예후가 엘리야의 예언대로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것임을 선언하는 것을 볼 때, 전율이 느껴집니다. 내가 없어도
선교사들이 선교지에 오래 있지 못하거나 추방당하는 상황이 많습니다. 선교사 입장에서는 안타깝거나 혹은 사역 중단으로 낙심하고 원망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상황에서 되려 현지인들이 일어서서 교회를 지키고 이어나갈 때가 많습니다. 더욱이 정해진 시간을 놓고 현지인들을 일꾼으로 양성했을 경우, 훨씬 더 놀라운 결과를 얻습니다. 제가 동역하고 있는 한 사역의 경우 말레이시아의 한 시골 도시 출신 사역자들이 동역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교회는 지난 50년 동안 50여 명의 전임 사역자를 길러냈는데, 선교사 두 분이 추방을 앞두고 현지인들 스스로 제자를 길러내는 시스템을 교회에 심었던 결과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과연 엘리야는 호렙산에서 위의 세 사람을 세우라는 명령을 이행하고 그의 사역이 끝이 난 것일까요? 그는 여전히 새 힘을 공급 받고 자기 사역을 이어갑니다. 나봇의 포도원사건 때 (왕하 8:70-15 예후에게 암시적 사역), 아하시야 왕 때의 사역 (왕하 2장), 그리고 승천시 엘리사를 세우는 일 등으로 계속 신실하게 사역을 이어갑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들을 하나님이 이뤄가십니다
(orchestrate). 많은 사역자들이 선교현장에서 더 이상 효과적인 사역을 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을 잘 알면서도 떠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의든 타의든 선교 현지를 떠나서도 얼마든지 다음 사역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소위 비거주사역과 같이 방송이나 인터넷이나 여러 가지 네트워크 등 기타 여러 방법으로 현지와 연결된 사역을 할 수 있습니다. 혹은 지금처럼 글로벌 사회에서는 어딜 가나 거의 모든 대도시에서 본인이 섬겼던 대상 민족을 디아스포라로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 다양한 사역으로 전보다 훌륭하게 섬기는 선교사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당신의 사람들을 통해, 공동체와 네트워킹을 통해 계속해서 당신의 사역을 우리 생각과 활동보다 훨씬 더 길고 넓고 깊고 높게 총체적으로 이뤄가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