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16 04:14
바울은 1장에서 이미 예수님을 만물을 지으시고 대속하신 분으로 소개했고, 이제 그분 안에 모든 것이 있고 그가 계시지 않은 것/곳이 없음을 분명히 합니다 (3:11). 그럼에도 헛된 철학적인 가르침이나 유대주의와 혼합된 신비사상에 미혹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도리어 이런 일들보다 육체의 소욕을 죽이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 경건의 삶인 것을 분명히 합니다.
할례, 법조문, 음식 규례, 절기 지킴 등의 이야기들은 유대교적인 영향이 있었음이 분명하며, 천사 숭배, 꾸며낸 겸손, 몸을 괴롭게 하는 일 등은 영지주의적인 모습이나 헬라철학의 금욕주의 등을 연상하게 합니다. 학자들은 여러 가능성을 얘기하며 영지주의적인 사상에 영향을 받은 유대교 분파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그러나 바울의 지적처럼, 이런 것들이 사람의 노력과 초보적인 수준의 영성을 추구하는 것일뿐, 이미 십자가에서 이 모든 것을 파하시고 충만함을 이루신 예수님 안에 있는 성도들에게는 아무 소용없는 것들입니다.
혹여라도 이런 일들을 부추김에 있어서 유대인의 선민사상이 작용했을까 우려하여, 바울은 다시 한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가 세상 모든 민족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것임을 상기시킴과 동시에, 모든 만물을 회복하신 것도 분명히 합니다 (3:11). 그 어떤 것보다 더 신비하고 놀라운 비밀인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십자가와 부활로 이루신 놀라운 회복과 영광이면 충분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고, 분냄과 노함과 악의와 비방과 부끄러운 말과 거짓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선한 일들, 하늘의 것들을 사모하는 삶으로 날마다 부활을 체험하는 삶이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