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27 23:56
[2년차 4/24일 묵상글에서 전체 내용을 다 포함하는 방향으로 이미 다뤘었습니다. 오늘은 몇 가지 신학적인 관점에서 짚어보고 적용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네 가지 각기 다른 환난을 당한 상황에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 때마다 하나님은 구원하시며, 그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올려드리는 내용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네 가지 상황 중에 첫째와 넷째는 메마른 광야와 파도가 흉용하는 바다의 상황에서 갈 바를 모르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가운데, 하나님의 구원이 임하여 거할 성과 소망의 항구로 인도하시는 은혜를 노래합니다. (이와 같은 광야와 바다의 도전은, 성경 이야기로 보면 하갈의 외침과, 요나의 부르짖음을 생각나게 합니다만 보다 일반적으로 볼 때,) 소위 인간의 타락으로 인한 환경의 변화로 인해 겪게 되는 여러 가지 어려움들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둘째와 셋째 상황은 제어할 수 없는 자연 환경으로 처하게 되는 고난과는 달리, 하나님을 거스르는 인간의 죄로 인해 자초하는 고난입니다. 지존자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그 뜻을 멸시한 결과 사슬에 매여 사망의 어둠 가운데 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길을 떠나 자기 욕심의 길을 따르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모르고 마침내 스스로를 싫어할 지경에 이르고, 죽음의 문턱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러나 은혜는, 우리의 연약함뿐 아니라 우리의 악함에도, 하나님께 기도하면 들으시고 구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선하심이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우리를 선대코자 하시며, 더욱이 그분의 언약에 따라 우리가 죄악을 행해도 돌이키기만 하면 용서하시고 그 언약에 근거해 사랑을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인자하심'은 바로 그분의 언약적 사랑을 뜻하는 '헤세드' 입니다. 그리고 2절에서 나온 '속량'받은 자들은 바로 룻의 이야기처럼, 대가를 치르고 기업을 되찾아주는 가장 가까운 친족에 해당하는 말입니다. 우리의 모든 연약함과 약함을 대신 짊어지시고, 영원히 그리고 단번에 드려지는 대속물이 되시는 우리 주님을 생각하게 하는, 하나님의 대속의 사랑을 노래하고, 감사와 찬송을 올려드리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