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25 00:59
진정한 회개는 바뀐 삶입니다. 유다는 다른 형제들과 비교하여 계속 확고한 리더십을 보여주면서도, 몇 가지 확실한 변화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먼저 르우벤이나 요셉과 대비되는 리더십의 모습입니다. 요셉은 형제들이 애굽을 처음 방문했을 때 그들을 알아보았지만 알아보지 못한 척하고, 같은 배에서 나온 베냐민을 보고 싶어 시므온을 볼모로 잡고 베냐민을 데려오라고 했습니다. 유다가 며느리 다말을 범했던 사실을 담보물을 보고 바로 인정했던 것과 다른 모습입니다.1
르우벤은 1차 방문 후에 다시 곡식을 사러가려면 베냐민을 데려가야 한다며 거칠게 야곱을 납득시키려 했습니다. 그 때 자신이 베냐민을 다시 데려오지 못하면 자기 두 아들을 죽여달라는 정말 몰지각하고 자식과 부모의 사랑 관계를 저버리는 망언을 합니다. 그러나 유다는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을 통감 및 공감하며, 자신이 그 죄와 책임을 지겠다고 야곱을 설득합니다.
마지막으로 전에는 자신의 숙적인 요셉을 팔아넘겼지만, 이제는 (아버지에 관한 한) 요셉을 대신하고 있는 베냐민을 위해 자기 몸을 대신 던져 담보로 삼고 있습니다. 결국 회개한 유다의 모습은 요셉의 회심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유다 지파 다윗의 자손으로 불리셨습니다.
1. 요셉과 유다는 두 가지 재미 있는 단어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바로 나카르 (נכר, NaKaR)'알아차린다'는 말과 '담보' 아라브(ערב, ARaB, 명사형은 에라본)입니다.
유다는 며느리 다말이 자기 물건들을 내놓았을 때, 바로 '알아보고' (38:26), 자신이 다말을 범했음을 바로 인정했습니다. 사실 그 물건들은 자신이 다말에게 성관계의 대가로 나중에 염소 새끼를 주겠다고 약속하며 '담보'(38:17,18, 20)로 맡겼던 자신의 인장 반지와 그 끈과 지팡이였습니다. 야곱은 요셉의 피묻은 채색옷을 '알아보고' 아들이 죽은 줄 알고 슬퍼했습니다. 요셉은 형제들이 처음 방문했을 때 그들을 '알아차렸지만' 모른 체했고, 형제들을 요셉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42:7,8). 유다는 자신을 베냐민의 '담보'로 삼았고 (43:9, 44:32), 베냐민 대신 자신을 내어놓았습니다 (44:33, cf. 창 2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