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25 20:05
이처럼 숨막히고 감동적인 절정의 장면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요셉의 꿈은 정말 놀랍게 이뤄집니다. 성경을 읽어나가면서 독자들은 요셉의 첫째 꿈이 형들이 와서 절할 때 이뤄졌음을 알게 됩니다 (42:9). 그러나 자신을 밝히지 않는 요셉이 배다른 형제들은 보내고 베냐민만 곁에 두려고 했을 때, 과연 그 둘째 꿈이 언제 이뤄질까 의심하게 됩니다. 이 때에 유다가 강력하게 자신을 희생하면서 회개의 모습을 보였고, 마침내 결정은 요셉의 몫이 됩니다.
어떤 꿈이든지 많은 노력과 희생을 대가로 성취되는 법입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요셉은 이미 그 값을 충분히 치렀고, 소위 성공했습니다. 지금부터 나오는 이야기는 덤으로 주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요셉의 꿈은 그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었습니다. 그 약속에 신실하게 당신의 백성을 살리고 번성하게 하시며, 그들을 통해 모든 민족에게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분의 꿈이 이뤄지는 데에는 대속의 용서가 필요했습니다. 유다가 그 값을 치르고 있고, 이제 요셉이 그 값을 치르고 있는 중입니다. 요셉은 애굽에서 아들들을 낳으면서 그 이름을 통해, 팔레스타인에서의 삶을 잊고 애굽에서 복을 누리며 살아가려고 했습니다. 이해할 만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복잡하고 엉망진창인 가정,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민족을 회복하라고 하십니다. 이제 요셉의 꿈은 인간의 야망을 넘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됩니다!
요셉은 자기 아들들의 이름을 므낫세와 에브라임으로 지었습니다 (41:51-52). 각 절마다 설명에 나오는 것처럼 '나샤 (נשׁה NaShaH, 잊다)'는 동사에서 나온 말이고, 에브라임은 '파라 (פרה PhaRaH, 번성하다)'에서 딴 말입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는 복을 말씀하실 때 (1:28, 35:8) 쓰인 단어입니다. 나중에 야곱이 요셉을 축복할 때 '무성한' 가지라는 표현을 쓰는데(49:22), 그것도 같은 동사를 사용한 것입니다.
두 이름 뜻을 합쳐보면, 자기 형제들과의 집안 흑역사는 잊어버리고, 복주시는 애굽 땅에서 잘 살아보겠다는 뜻입니다. 너무 당연한 일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요셉은 말로는 그렇게 과거를 묻어두는 것 같았으나 그 트라우마는 쉽게 가시지 않았습니다. 배다른 형제들을 대한 그의 태도에서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극복할 때에야, 하나님이 의도하신 진정한 야곱 집안, 곧 이스라엘 민족의 '번성'이 이뤄졌습니다. 하나님은 유다에게 일하셨을 뿐아니라, 요셉에게도 일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