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16 08:35
성경을 통틀어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와 외인(/나그네/거류민)들의 보호자로 표현되고, 하나님의 백성은 이들을 섬기고 잘 도와야 한다고 거듭거듭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현실은 반대일 때가 너무 많아서, 힘이나 물질이나 수적 우위를 가진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압제하고 착취합니다. 전도자는 이런 해결되지 않는 현실에 대해 다시 한번 안타까워하며 돈과 권력의 폐단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말에 폐단 (5:13, 16) 혹은 불행(6:1)으로 번역된 히브리 단어 '라아'(רָעָה)는 보통 '악'으로 번역됩니다. 하나님은 섬기라고, 복이 되라고 돈과 권력을 허락해 주시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가지고 더 쌓고 더 강해지려고 애를 씁니다. 행정과 조직을 통해 책임지는 관계를 가지라고 서열을 정해주고, 심지어는 감시제도까지 만들어 놓지만, 서로 눈감아 주고 심지어는 착취를 강요하는 다단계의 압제구조로 변질됩니다. 그리고 그 수뇌는 최고권력자인 왕입니다 (5:9-12). 그리고 대부분 이런 바탕에는 돈과 (섹스와) 권력의 악순환이 있어 서로 주고 받으며 악의 뿌리를 깊게 내리고 더 높이 쌓아올리려고 합니다.
전도자가 말하는 아이러니이자 역설은, 이런 자들이 아무리 쌓고 높이고 늘이려고 해도, 첫째는 아무리 해도 만족이 없으며 (5:10, 6:7), 또한 그들이 쌓은 것을 다른 사람이 누리든지 (5:11, 6:2), 다음 대에 넘겨주려 해도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5:14). 그래서 전도자는 (이 땅에 사는 동안) 주어진 것을 누릴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복이라고, 현실적인 만족의 기준을 제시하고, 그것마저도 선택적으로 주어지는 것임을 한탄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전도자가 갖고 있는 뼈가 시리게 아픈, 냉정한 현실주의적 만족 기준에 어느 정도 공감하면서도, 이 땅의 삶이 다가 아니기에 도적도 없고 좀도 먹지 않는 하늘에 쌓으라는 주님의 말씀을 되새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