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20 18:33
전도자는 7장에서 지혜를 궁구하고, 지혜로운 자를 찾아 떠났지만, 결국에는 헛수고였고 거의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나마 그가 엿볼 수 있었던 지혜를 언급하면서, 또한 학대와 뇌물과 참지 못하고 쉬 분노하는 것 등이 지혜를 막는 일들이라고 경계합니다. 지혜와 맞물려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말이 '죽음'에 대한 생각입니다. 사람이 이 땅에서의 인생에 끝이 있음을 생각하게 되면,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끝을 통해 간접적으로 죽음을 체험하고 준비하게 되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더 지혜롭게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죽음에 관해서도 여전히 전도자 특유의 냉소적인 철학이 드러납니다 (7:15-18). 전도자가 지혜를 얻고자 가까이 해본 죽음의 예들로서, 자기 의 가운데 죽은 자도 있고 (반대로 악행에도 장수하는 자들이 있었으며), 어리석어 기한 전에 죽는 자들, 지나치게 의롭거나 지혜로워 스스로 패망하게 된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선과 의를 행하며 살려고 애쓴 것이 얼마나 헛되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자는 양 '극단'을 피하고 적당히 '중도'를 취하라고 합니다. 실제로 우리의 삶은 어느 정도 의와 악의 양쪽의 어디엔가 위치해 있기 마련이고 (7:20), 결국에는 그렇게 살다 정한 때에 죽는 것이 인생이 아니냐고, 전도자는 말하는 것입니다.
한 가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18절의 상반절과 하반절의 연결 관계입니다. 그가 하나님을 이야기하고 그분의 절대적인 주권을 인정하여 우리 삶에 일어나는 여러 부조리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그는 죽음 뒤의 궁극적인 심판과 영생에 대해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전도자가 적당히 중도의 삶을 사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의 지혜라고 말하는 것은 염세적이거나 처세적인 것에 지나지 않으며, 그것이 진정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의 태도라고 볼 수 없습니다. 죽음 뒤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고,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며, 그 결과 영생과 영벌에 처해집니다 (요 5:29, 계 20:13).
성경이 말하는 죽음은 육체적 죽음 뿐 아니라,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단절과 그로 인한 무가치하고 비생산적이고 파괴적인 삶을 의미합니다. 즉, 살아도 죽은 자와 같은 삶이 있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삶은 그 반대의 의미가 됩니다 (예, 시편 1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