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22 12:38
전도서의 본론의 마지막 부분 이야기에는 청년의 때와 노년이 대비되고 있습니다. 인생이 시간을 멈추게 하거나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청년의 때는 곧 지나기 마련이고 중년을 거쳐 노화와 이어서 죽음이 곧 다가올 것입니다. 문제는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액면 그대로 청년의 때가 유한하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우리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도 할 수만 있다면 청년처럼 살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전도자의 말은 끝까지 잘 들어야 합니다. 청년의 때를 마음에 원하는 대로 실컷 즐기라고 하더니, 곧이어 그 결과는 책임져야 한다고 합니다. 전도자가 매달은 균형의 추는 바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인생의 흔적은 한 사람의 얼굴에 그려지고, 사람들의 기억에 각인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하나님의 책에 기록되어 그대로 심판받을 것입니다. 12:1-7절의 내용은 흔히 은유적으로 해석되어 노화가 일어날 때 신체의 현상과 그에 따른 결과를 말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눈과 귀가 어두워지고 입이 닫히고 이가 약해집니다. 욕망이 그치고 스스로 거동하기 힘들어지며 기력이 달리고 흰머리만 늘 것입니다.
전도자는 이 때가 오기 전에 미리 '창조주'에게로 돌아갈 것을 기억하라고 합니다. 창조주가 갑자기 등장하여 혹시 '무덤'을 잘못 기록한 것이 아닌가 하는 해석도 있습니다. 그러나 육체는 흙으로 영은 다시 본래 주신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간다고 하는 구절을 생각해보면 (12:7), 둘 모두를 충분히 아우르는 뜻으로 보아도 괜찮습니다. 다만 이 사실을 깨닫고, 할 수만 있다면 일찍부터 믿음으로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것이 필요합니다. 심지어는 늦게라도 노년의 때에 깨닫는다면, 또 힘써 돌이켜 여생이라도 의미 있게 살면 됩니다. 특히 죽음이 단순히 육체의 노화와 호흡과 생명의 중단의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의미 있고 그 뜻을 이루는 생산적이고 풍성한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육체적인 노화 뿐만 아니라, 청년의 삶 때부터 그렇게 살아야 하고, 혹은 역설적으로 (비록 노화로 인한 약화는 인정하더라도) 나이와 상관없이 그런 삶을 살 수 있다는 소망을 갖게 됩니다 (10/5일 묵상글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