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15 10:38
오늘 본문에는 (요 2:13-3:36) 예수님의 성전 청결 사건과 예수님을 만난 니고데모 이야기와 세례 요한의 예수님 증거 이야기가 나옵니다.1 하나님나라의 시작과 그 하나님나라를 체험하는 사람과 그에 대한 세례요한의 증거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이 모든 일들이 당신의 희생을 통해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이신 것을 증거하십니다.
예수님의 성전 청결 사건은, 앞서 가나의 혼인잔치가 하나님나라의 시작을 알린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2 특히 다른 복음서들과는 달리, '성전을 헐고 사흘 만에 다시 짓겠다'는 말씀의 의미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대제사장으로서 당신의 몸을 성전과 영원한 대속 제물 삼아 드리고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심으로써, 모든 민족을 위한 제사제도를 당신 안에서 온전히 완성시키신 것을 뜻합니다. 즉 어느 민족 누구든지 언제 어디서나 이제 그분의 말씀과 그분의 영으로 그분의 대속을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의 임재를 누릴 수 있게 해주신 것입니다.3
니고데모는 이런 하나님나라의 실재를 어떻게 누릴 수 있는지 깨닫게 된 사람으로 소개됩니다.4 예수님이 하나님의 독생자로 이 땅에 오셔서 대속제물 되어 하나님나라를 임하게 하셨고, 이 생명의 빛으로 나아와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는 사람들은 위로부터 즉 하나님께로부터 다시 태어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그분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됩니다.5 반대로 이 빛으로 나아오지 않고 계속 어둠에 머무는 이들은 이미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당파적 시각으로 예수님을 견제하는 제자들에게 위로부터 오신 이가 무한한 하나님의 성령 부으심을 받아 시작한 그 나라가 흥해야 함을 인정하고 증거합니다!
1. 흥미롭게도, 니고데모 이야기와 세례 요한의 증거는 대화 구조 상 대칭을 이루고 있습니다. 먼저 소개글로 시작하고 (prologue), 둘 사이의 대화가 이어지며, 독백으로 끝납니다. (ref. C. Marvin Pate, The Writings of John: A Survey of th eGospel, Epistles, and Apocalypse)
prolugue dialogue monologue
니고데모 2:23-25 3:1-12 3:13-21
세례요한 3:22-24 3:25-30 3:31-36
2. 헤롯 대왕은 이두메 (에돔 지역) 출신으로 유대인들에게는 그 정통성을 인정받지 못했고, 이로 인해 많은 열등감이 있었으며, 유대인들의 환심을 얻기 위해 여러 가지 대규모 토목 공사를 단행했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예루살렘 성전 증축으로 BC 20년부터 시작했고, 그의 사후에도 계속되어 AD 64년에 마무리 되었습니다. (물론, 안타깝게도 그 웅장한 상아 건축물-솔로몬 회랑-이 AD 70년에 성전과 함께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두 무너졌지만요.) 사람들의 말처럼 예수님의 성전청결 당시 이미 48년 동안이나 그 건축이 진행 중이었습니다.
많은 학자들이 성전청결 사건이 (예수님 사역의 마지막 한 주에) 한번만 있었던 것으로 보며, 요한이 메시아의 시대 즉 하나님나라의 시작을 선포하는 의미로 요한복음 서두에 가나 혼인잔치의 기적과 성전청결사건을 함께 배치해 놓았다고 봅니다.
3. 모든 민족을 위한 예배 처소의 완성은 더 이상 성전이 아니라 새하늘과 새땅 (좀 더 좁혀 초점을 맞춰) 새예루살렘이 되고, 모든 민족이 그곳에 와서 각각 자신들에게 허락된 고유의 문화로 주님을 예배하게 될 것이 요한계시록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계 22:10-27). 2년차 12/30일 묵상글 참조.
4. 니고데모가 자신의 신분을 감안하여 낮에 예수님 방문을 꺼리고 밤에 찾아왔지만, 그는 상징적으로 어둠에서 빛되신 예수님께로 나아온 셈입니다. 천국에 들어간다는 말은 곧 천국의 실재를 체험한다는 말이며, 니고데모는 이후에 두 번 더 언급되면서, 온전히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7:50-51, 19:39-42).
5. 당시 중간기에는 경건하게 하나님을 믿었던 사람들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렀고 (다음의 외경들에서 그 예들을 찾아 볼 수 있음. 솔로몬의 지혜서 5:5, 솔로몬의 시편 17:30, 시락 4:10 등등), 요한의 동시대 랍비들도 유대교로 개종하고 세례 받은 사람들을 '새로 갓태어난 아이'라고 불렀던 것을 보면, '거듭남' 혹은 '위로부터(/하나님께로부터) 남'의 의미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됨(요 1:12)을 뜻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