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16 09:28
요한복음 4장에는 사마리아 수가 성 여인의 이야기와 갈릴리 헤롯왕 신하의 아들 병고침 이야기가 나옵니다. 특히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는 요한복음에만 등장하며 다시 한번 모든 민족을 위한 하나님나라 즉, 누구든지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을 예배하게 되는 메시아의 시대가 이미 임했음을 보여줍니다. 다른 복음서들과 마찬가지로 제자들과 고향 사람들이 예수님의 사역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 하고 받아들이지 못 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당시 사마리아 사람들과 유대인들간의 적대 관계를 보면, 예수님이 일부러 사마리아 땅을 지나가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4:4). 그 목적은 다름 아니라 하나님나라의 놀라운 구원 역사가 유대인뿐만 아니라, 모든 민족 누구에게나 부어지고 있고, 장차 제자들과 세우신 교회를 통하여 모든 민족 누구에게나 전파되어야 함을 보여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상종할 수 없는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것으로 만족하시는 주님의 사역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4:27, 31-38).1 종교/사회/문화/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있었던 여인은 일반적인 종교 이야기로 자신의 삶을 주님 앞에 얼버무리려 했지만, 예수님은 정곡을 찔러 그녀의 구원문제를 다루셨고, 마침내 여인은 예수님의 증인이 되고, 마을 전체가 예수님께 듣고 믿게 됩니다.2
예수님은 성령을 한 없이 부음받으시고, 동일하게 넘쳐나도록 성령을 부어주시는 분이십니다 (3:34, 4:14). 말씀이신 예수님, 성령을 부으시는 예수님, 그분께서 영원한 성전과 대제사장과 희생제물이 되시므로, 이제는 그리심산에 세운 사마리아 사람들의 성전이나 유대인의 예루살렘 성전이나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그 진리의 말씀과 성령으로 예배하는 때가 이미 임한 것입니다. 헤롯 왕 신하의 아들을 원격으로 고쳐주심으로 다시 한번 그 사실이 확증됩니다. 이처럼 하나님나라의 임재가 확실함에도 예수님을 제한하고 (심지어는 배척하는) 고향 사람들이 사마리아 수가 성 사람들과 대비되고 있습니다.
참조: 요한복음의 선교적 관점
1. 예수님 시대 전후로, 당시 사마리아 사람들은 유대인들과 상호 배척 심지어는 국지 전쟁까지 불사하는 사이였습니다. 특히 예루살렘으로 가는 순례객들에 대해 적대적이었던 것 때문에 자주 충돌이 일어났고, 이로 인해 보통 유대인들은 갈릴리와 예루살렘을 오갈 때 사마리아 지역을 통과하지 않고, 요단강 동편 베레아 지역을 지나 여리고를 통해 이동했습니다. 4절은 영어식으로 직역해보면 'It is necessary for him to go through Samaria'로서 어떤 목적을 위해 그곳을 통과해서 가실 필요가 있었다는 뜻입니다.
여인과의 대화에서 구원은 유대인에게 있다 말씀하셨지만 (4:22), 곧 이어 당신을 통해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성령으로 어느 누구나 예배할 수 있다고 말씀하심과 (4:23-26), 제자들에게 그곳 사마리아 땅을 배경으로 들판이 희어져 천국 추수의 때가 이미 이르렀다고 말씀하심으로써 (4:34-39), 당시 가장 적대적으로 대했다고 볼 수 있는 (우리 나라로 치면 일본, 심지어는 북한이라고 볼 수 있는) 사마리아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의 천국을 선포하신 것이었습니다.
2. 예수님을 향한 여인의 질문은 일면 사마리아 사람으로서 타당한 면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할 당시, 유대 땅에 섞여 살던 사마리아 사람들이 포로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의 성전재건에 참여하려 했지만 전적으로 배제되었고, 이에 불만을 품은 그들은 그리심 산에 그들만의 성전을 따로 세웠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대화하던 수가 성은 바로 그리심산과 에발산이 마주보이는 갈림길에 위치한 곳이었고, 눈을 들어 산을 보면 바로 사마리아 사람들의 성전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인은 일면 본인의 문제를 쉽게 드러내지 않고 민족과 종교 전반에 대한 일반적인 질문 뒤에 숨으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저희 모두가 이런 경향을 갖고 있기에 쉽게 이해됩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녀 자신의 삶의 문제를 내놓으라 말씀하시고, 나다나엘과 니고데모를 꿰뚫어 보신 것처럼, 간파하여 말씀하십니다. 생명수 역시 그저 삶을 좀 편하게 해주는 말 정도로 받았다가, 영생하는 생수인 것을 알고 여인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고 곧 그분이 모든 민족 누구에게나 구원이 되시는 메시아인 것을 알게 됩니다.
그녀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마을로 돌아가 사람들에게 증거한 것을 보면, 누가복음에서 말씀하신대로 복음을 받아들이는 내부자 "평안의 사람"이었던 것을 알게 됩니다 (10:6). 즉, 예수님이 사마리아 땅을 통과하셔야 했던 것이, 이 여인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한 것이자, 마을 전체를 위한 것이었고, 나아가 주님의 사역이 모든 민족을 위해 영원한 구원을 베푸시려 하심임을 입증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