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21 22:38
포로되었던 땅에서 그 땅의 보물들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모습은 우리에게 출애굽을 연상 시킵니다. 마찬가지로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개혁은 가나안 백성과 구별되어야 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삶의 모습과 정체성에 대해 다시 상기시켜 줍니다. 에스라-느헤미야에서는 특히 타민족과의 통혼 금지 (스 9-10장), 성전 중심 예배 제도 유지, 안식일 준수 (느 13장) 등이 강조됩니다.
에스라는 대제사장이요 학사였습니다. 본래 제사장의 역할이 크게 제사(/예배) 섬김과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었기에, 그가 돌아와서 예배 관장과 백성들에게 율법 가르치는 일을 한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긍정적인 부분은 에스라의 회개에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동참한 것과, 또한 말씀을 들은 이들이 자발적으로 나아와 에스라에게 실천 강령을 부탁한 점입니다. 즉, 말씀에 기반한 회개와 함께 구체적인 행동 변화를 자발적으로 추구했던 점입니다.
가나안 족속들과 통혼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이, 솔로몬의 연혼과 아합과 이세벨, 여호사밧과 아합의 집 사이의 연혼 등의 예에서 보는 것처럼 우상숭배의 길을 열어놓는 것이었음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기왕에 결혼한 사람들을, 심지어는 자식 있는 사람들까지, 이혼으로 갈라냈던 (/떠나게 했던)1 것은 안타깝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스 10:11, 44). 주님의 말씀처럼 '간음한 연고 외에는' 아내를 버리지 말라 하셨고, 바울 역시 이미 결혼한 사람들은 "그대로 지내라" (고전 7:4 ff) 말했기 때문입니다. 조금 다른 경우이긴 하지만, 이방 여인임에도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자 했던 룻이 다윗 집안의 어머니가 되었음을 생각해 봅니다. 혈통의 순수성이 반드시 신앙의 순수성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1. 통혼 금지는 이미 출애굽기 34:16절과 신명기 7:3-4절에서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명하신 바입니다. 그 목적이 중요한데, 이는 가나안 족속의 딸들이 이스라엘 백성의 아들들을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서 떠나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떠나다' (바달, בּדל)라는 표현은 구별/성별하다(스 6:21), 위임하다 (스 8:24, 10;16), 갈라서다(끊어내다, 절교하다, 스 10:8, 11, 느 9:2, 10:28, 13:3) 등의 뜻으로 에스라-느헤미야서에서 사용되었습니다.
모세오경에서는 창조에 있어서, 흑암과 밤낮의 구별, 궁창 위 아래 물의 구별 등에 사용되었고 (창 1:4, 6, 7, 14, 18), 성막과 관련해서는 지성소와 성소의 구분(출 26:33), 제사와 관련해서는 희생제물을 갈라/쪼개 드리는 것 (레 1:17, 5:8), 거룩함과 정함과 부정함의 구별 (10:11, 11:47)에 사용되었고, 레위인의 구별과 위임에 사용되었으며 (민 8:14, 16:9, 신 10:8), 고라/다단/아비람에 부하뇌동하여 반역하는 자들을 멸하실 때 그들에게서 떠나라 하셨고 (민 16:21),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하는 자들을 가려내어 벌하신다고 말씀하실 때 사용되었습니다.
역사서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선택 (왕상 8:53), 다른 지파에서 떠나 광야에서 다윗을 따른 자들 (대상 12:9), 성가대로 구별된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의 자손들 (대상 25:10) 등을 지칭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스라엘 백성의 선택과 구별 이 정함과 부정함의 구별과 거룩함의 성별로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레 20:24-26). 이런 면에서, 포로에서 귀환한 백성들이 자신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규정하고, 성별되어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헌신코자 할 때, 이런 분리를 강조한 것은 얼마든지 이해할 만한 일이었음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