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28 06:48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느헤미야의 지도력과 백성들의 헌신으로 성벽 재건을 마쳤지만, 포로기 이후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다시 세워지기 위해서는 여전히 더 많은 일들이 이뤄져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예루살렘 성이 다시 하나님을 예배하는 신앙의 중심이 되고, 많은 백성들이 거하는 성으로 회복되게 하는 일이 필요했습니다. 7장에서는 이런 여러 가지 문제들과 함께 몇 가지 긍정적인 암시들이 주어집니다.
성전이 재건 된 후에도 여전히 황폐한 곳에, 이제 겨우 성벽을 세우고 도시의 모습을 갖췄기에, 그 안에 지어진 가옥과 거주민들의 수는 매우 적었습니다 (4절). 하나님이 주신 마음을 따라 느헤미야가 먼저 한 일은 예루살렘 성을 다스릴 관리를 세우고, 포로에서 돌아와 예루살렘과 유대 지역에 거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인구조사와 함께 성전에서 섬길 사람들을 파악한 것이었습니다 (회중 42,360명, 노비 7,337명과 찬양대원 245명, 66-67절). 어떤 이들은 계보에 따른 조사 결과, 그들이 과연 이스라엘 백성의 후손인지 알 수 없었고, 일부 제사장들 역시 그들이 제사장 가문이라는 증거가 없어 제사장 직이 정지되었습니다.
이처럼 인구조사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 돌아온 사람들이 언약의 백성인 것을 확인함과 동시에, 중흥과 재건을 위한 행정적 기초 자료를 얻은 것이었습니다. 이를 토대로 11장에서 볼 것과 같이 예루살렘을 번성케 하는 계획을 세울 수 있었기에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또한 일부 족장들이 성전에서 섬기는 일들을 위해 은 금 예물과 제사장들의 예복을 바친 것도 하나님을 예배하는 신앙의 중심으로 회복되는 데 긍정적인 암시를 주는 일이었습니다 (70-72절). 52일 동안 성벽을 재건한 것은 놀라운 일이었지만, 이것 역시 회복과 중흥의 먼 길에 한 걸음 더 내디딘 것이었을 뿐입니다.
그리스의 역사가나 요세푸스 같은 유대 역사가들은 서기 70년 예루살렘 멸망 시 수십 만에서 백 만 이상의 인구가 예루살렘에 살고 있었다고 말하지만, 고고학 관련 학자들은 고대 도시들에서 발견한 증거들에 따라 1 에이커 (4047 평방 미터)당 대략 160-200명 정도가 살았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이에 따르면, 느헤미야 당시 예루살렘 성의 크기는 약 30 에이커이고, 추후에 적정 인구가 거주하게 되었을 때 약 4,500명 정도였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참고로 솔로몬 당시는 약 5,000명으로 보고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는 약 80,000 정도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