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25 10:00
느혜미야는 에스라와 동시대 인물로 서로 동역했지만, 그의 (일시) 귀환과 사역은 에스라보다 약 13년 정도 뒤에 시작되었습니다. 에스라는 왕에게 모든 것을 구하여 얻을 수 있었던 사람이고, 느헤미야는 왕의 술 맡은 관원인 것을 보면, 페르시아 왕국의 실세 중에 실세가 유대인들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형세는 에스더 서에 나와 있는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 제국을 섬겼던 모르드개의 충정과 목숨을 건 에스더의 헌신에 따른 결과로, 제국 전역에서 부림절이 지켜지고 유대인의 살륙의 날이 뒤바뀌어 유대인들의 원수들이 화를 당한 날이 된 것에 잘 암시되어 있습니다. 다니엘 때부터 세워졌던 하나님 백성의 영향력이 이제는 궁중 뿐만 아니라, 제국 전체에 확산된 것이었습니다.
모든 일에 순서가 있듯이, 또한 다윗이 보여주었던 성전과 예배 중심의 삶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8/23일 묵상글 참조), 성전을 세운 뒤에 돌아온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을 회복하려 했던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에스라는 말씀 개혁과 함께 예루살렘 재건에 힘썼지만, 다시 한번 성전 건축 때와 같은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에스라 4:6-24절은 에스라 당시 주변 민족들이 올린 조서이고, 느헤미야는 바로 이에 따른 결과를 동생 하나니(1:2, 7:2)에게서 듣고 슬픔에 잠겨 금식하며 회개하고 기도하게 된 것입니다 (느 1:1-4).
느헤미야는 자신과 동시대인들과 조상들의 죄를 끌어안고, 말씀에 근거하여 회개합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자신들이 하나님이 택하신 약속의 백성인 것을 호소합니다. 또한 자신 뿐 아니라 다른 이들과 함께 기도합니다 (1:11절 참조). 그리고 왕 앞에 나아갔을 때도 무시로/수시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마침내 응답을 얻습니다. '이 때를 위하여' 그 자리에 세워주신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하나님의 교회를 그 나라를 위하여 구하는 지도자들이 필요합니다. 그와 함께 하는 기도의 동역자들이 필요합니다 (에 4:14, 16) 참조.
위의 연표에서 보시는 것처럼, 당시 성벽 재건 시도에 대해 주변 민족의 방해 공작이 조서를 통해 설득력을 얻을 수 있었던 것도, 애굽이 그리스와 손을 잡고 페르시아를 거스린 국제 정세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세 차례에 걸친 그리스 정복이 무위로 그치고, 마침내 그리스는 점점 더 성장하게 되는 상황에서 아무리 당시에 유대인들에게 지지를 보내던 제국이었음에도 성전이 아니라, 성곽 재건은 다른 문제였던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후에 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를 정복하고 나서, 고레스의 묘비를 보고 절을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는 다니엘의 예언에 따라 그리스가 장차 제국을 이루고 그 손에 페르시아가 막을 내릴 것을 알아 '(알렉산더,) 그대를 기다렸노라'라고 묘비에 쓸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